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23층 빌딩 서울스퀘어 앞은 점심때가 되면 ‘안개의 거리’로 변한다. 건물 앞 인도가 흡연자 100여 명이 내뿜는 자욱한 담배연기로 뒤덮인다. 건물 안은 금연이고 건너편 중앙차로 버스정류장도 지난해 12월 금연구역으로 지정됐지만 그 사이에 있는 인도는 아직 금연의 사각지대다.
16일 낮 12시 이곳에선 42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30분이 지나자 107명으로 늘었고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인 오후 1시엔 143명이 담배를 물고 있었다. 대부분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남성이었다. 건물 앞 보행로의 길이가 106m인 점을 고려하면 담배가 1m 간격으로 줄지어 타오르는 셈이다. 폭이 4m인 보도 양끝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는 무리도 있었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한 여성은 스카프로 코를 막고 총총걸음으로 그 사이를 지나갔다. 선글라스를 낀 미국인 부부는 A4용지 크기로 접은 서울 지도로 담배연기를 휘저었다. 임신부 윤모 씨(33)는 “두 번의 유산 경험이 있어 담배연기를 피하고 있다”며 “건물 뒤편으로 돌아 사무실로 가면 10분 정도 더 걸린다”고 말했다. 도로변 가로수는 이곳 흡연자들이 뱉은 침으로 범벅이 돼 있었고 그 사이로 꽁초가 나뒹굴었다. 이 건물 10층에서 일하는 한 대기업 과장은 “업무시간에는 나오기가 힘들어 점심에 서너 대씩 몰아 피운다”며 “(행인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피울 데가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금연지역 확산과 함께 서울스퀘어 앞거리처럼 직장인들이 특정 공간에 모여 흡연하는 일명 ‘넥타이 스모킹 존(Necktie Smoking Zone)’이 생기고 있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 등 직장인 밀집지에 이런 곳이 늘면서 비흡연자들이 통행을 꺼리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있는 LS타워 옆 골목도 아침 출근시간마다 직장인 수십 명이 늘어서서 ‘담배 향연’을 벌인다. 이 건물에 근무하는 비흡연 직장인들은 담배연기를 피해 가까운 골목 쪽 출입구 대신 다른 통로를 이용해 출근한다. 3월부터 길거리 금연이 시작된 서울 강남대로도 강남역 9번 출구 앞 흡연구역 때문에 그 일대가 통행 기피 지역이 됐다. 지하철 출구 앞 만남의 광장 한쪽에 만든 3.3m²(1평) 남짓한 흡연공간에 강남역 일대 직장인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재수생 최모 씨(여)는 “흡연구역이 있어도 연기와 담뱃재는 경계 없이 흩날리기 때문에 여기선 누굴 만나기가 싫다”고 했다. 길거리 흡연의 폐해가 커지면서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고 흡연권도 보장하는 절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광장과 버스정류장, 공원 등 일부 지역만 흡연을 금지했을 뿐 보행자가 많이 다니는 길거리를 금연지역으로 정할 계획은 없다.
국회에도 아파트 복도와 계단, 지하주차장 등 공동주택 내 흡연이나 운전 중 흡연을 금지하는 법안이 12건 발의됐지만 심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 18대 국회 임기 후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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