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文公(등문공)·상’의 마지막 장인 제5장이 시작된다. 이 제5장은 첫머리를 따서 ‘墨者夷之’장이라고 부른다.
이 장에서는 묵자 사상과 맹자의 사상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묵자는 이름을 翟(적)이라 하는데, 맹자보다 앞선 시기의 인물이다. 묵자는 薄葬(박장)과 兼愛(겸애)의 설을 주장했는데, 묵자의 도를 신봉하는 夷之는 맹자를 만나 묵자의 설이 우위임을 확인하려고 했다. 맹자는 그를 만나주지 않고, 제자 徐(벽,피)을 통해 묵자의 주장이 지닌 결점을 비판하여 들려주고, 유교의 厚葬(후장)과 仁愛(인애)의 설이 인간의 情理(정리)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墨者는 墨子의 도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夷之는 성이 夷이고 이름이 之이다. 因은 중개자로 삼는다는 말이다. 不來는 ‘올 필요가 없다(不必來)’ ‘오지 말라(勿來)’라는 뜻이다. 이때의 不은 금지사와 같다. 단, 이황과 안정복은 이 부분을 맹자의 말로 보지 않고, 맹자가 장차 가서 보리라고 말하자, ‘이자가 오지 않았다’라고 사실을 서술한 문장으로 보았다. 일설로 부기한다.
맹자는 병을 稱託(칭탁)하여 이자를 오지 못하게 했다. 주자(주희)는 이자의 뜻이 정성스러운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려고 그런 듯하다고 설명했다. 정조 대왕과 金近淳(김근순)이 맹자에 대해 강론한 내용을 묶은 ‘鄒書春記(추서춘기)’에 이에 관한 문답이 있다. 김근순은 맹자가 그럴 마음이 없으면서도 ‘내가 진실로 만나 보기를 원한다’라고 하고 ‘내가 장차 가서 만나 보겠다’라고 말한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정조는 맹자가 처음에 이자를 만나 보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를 가르치려는 방편이었다고 변호했다. 맹자가 뒤에 서벽을 통해 자기주장을 자세히 설명한 일을 보면, 정말로 그를 찾아보려는 뜻이 있었으리라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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