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文公(등문공)·상’ 제5장이다. 묵자의 도를 신봉하는 夷之(이지)는 맹자를 만나 묵자의 설이 우위임을 확인하려고 했다. 맹자는 처음에는 그를 만나주지 않고, 두 번째 그가 찾아오자 우선 제자 徐(벽,피)(서벽)을 통해 묵자의 주장이 지닌 결점을 비판하여 들려주었다.
他日은 後日(후일)과 같다. 이지가 만나러 왔으나 맹자가 병을 稱託(칭탁)하여 만나주지 않은 그 후의 어떤 날을 말한다. 可以見은 만나볼 수 있다는 말이니, 可以는 가능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동사구이다. 直은, 주자에 따르면, 해야 할 말을 다하여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病에 稱託하는 것은 관습이었던 듯하다. ‘公孫丑(공손추)·하’ 제2장을 보면 맹자가 齊(제)나라 宣王(선왕)의 賓師(빈사)로 있을 때, 선왕이 사람을 보내 감기를 핑계로 자기 쪽에서 갈 수 없으니 조정에 들라고 요구하자, 병이 나서 조정에 나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 그러고는 다음 날 東郭氏(동곽씨)의 곳으로 弔問(조문)하러 가서, 병 때문에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드러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맹자’는 맹자의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으므로, 이 墨者夷之(묵자이지)장을 보면 묵자의 사상보다 맹자의 사상이 우월하다고 판명이 난 것으로 되어 있다. 앞서 ‘등문공·상’ 제4장에서 맹자의 사상이 허행의 農家者類(농가자류) 사상보다 우월하다고 결판난 듯이 서술되어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百家爭鳴(백가쟁명)의 전국시대에는 맹자가 주장하는 仁義(인의)의 사상이 결코 다른 사상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맹자 스스로도 다른 사상을 주장하는 인물들과 대면하기를 꺼렸을 것이다. 다만 이 장에서 알 수 있듯이, 맹자는 다른 사상가들과의 논변을 회피하기보다는 간접토론을 통해서라도 자기 사상의 骨髓(골수)를 분명히 드러내려고 했다. ‘不直則道不見하나니 我且直之하리라’라는 말에서 그 決然(결연)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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