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형 공연 ‘커뮤니티 댄스’ 붐
전문가-비전문가 경계 허물어, 일반인들 선발 춤무대 잇달아
28일 오후 8시 국내 최고의 공연장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서 전문무용수가 아닌 일반인들이 현대무용을 공연한다. 24명의 무용수는 10대 후반의 여대생부터 30대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대형 병원 약제사, 증권사 브로커 등이다. 24명 중 7명은 남자다.
이들은 현대무용 안무가인 정영두 씨의 창작무용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의 창작과정에 참여한 사람들. 이 작품의 구상을 위해 1월부터 정 씨가 진행한 7주 일정의 워크숍에 참여한 72명 중에서 최종 선발됐다. 정 씨는 이들과 공동작업으로 일반인 버전의 ‘먼저 생각하는 자…’를 무료로 선보인 뒤 11월 같은 공연장에서 전문무용수들과 함께 공연할 예정이다.
이 사례처럼 공연예술에서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확산되고 있다. 무용가 안은미 씨는 지난해 선보인 ‘조상님들께 바치는 댄스’에서 60대 이상의 할머니들을 전국에서 모아 무대 위에 올려 춤추게 했다. 2월에 발표한 ‘사심 없는 땐스’의 주인공들은 서울국제고를 다니는 10대 청소년들이었다.
마임이스트 노영아 씨는 5월 서울의 청계광장부터 광교까지 청계천변 산책로 360m 구간에서 일반 시민과 배우 100명이 어우러진 길거리 퍼포먼스 ‘풍경 2012-천변천변’을 준비하고 있다. 노 씨는 지난해 5월에도 ‘하이서울 페스티벌’에서 시민과 배우 70여 명과 함께 거리 공연을 했다. 당시 참가자들에게 한지로 만든 옷을 입히고 느린 동작의 퍼포먼스로 빨래터 가는 풍경을 재현했다.
‘공연 창작집단 뛰다’는 지난해 전국을 돌며 ‘쏭노인 퐁당뎐’이라는 제목의 거리 인형극을 일반 시민 참여 형태로 열었다. 일반인 대상의 워크숍을 열고 그들 각각의 사연을 끌어내 인형의 캐릭터로 형상화했다.
무용계에서 ‘커뮤니티 댄스’(공동체 춤)로 분류하는 이런 일반인 참여형 공연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북미와 유럽에선 역사가 오래됐고 활발하다. 세계적 안무가 피나 바우슈는 1978년 자신이 안무한 ‘콘탁호프’를 2000년엔 65세 이상의 일반인들을 참여시켜, 2008년에는 10대 청소년들을 내세워 공연했다. 영국에는 1986년 ‘커뮤니티 댄스 재단’이 생겨 현장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작업하는 예술가가 4500명이나 된다.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는 지난해부터 커뮤니티 댄스를 아예 독립된 고정 프로그램으로 삼았다. 곽고은 김준기 김민정 김준영 등 현대 무용가 7명이 서울시내 10개의 청소년 시설 학생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작품을 만들어 10∼20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10분 안팎의 작품 10개를 호암아트홀에서 공연했다.
시댄스의 황병철 사무국장은 “커뮤니티 댄스는 아티스트와 보통 사람들의 만남, 그 만남을 통한 변화 자체에 방점이 있다. 공연은 그런 과정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반인 참여 공연은 전문가의 테크닉을 습득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전문가의 역할은 가르치는 데 있지 않고 공동 작업을 통해 일반인 스스로 예술가가 되도록 안내하는 데 있다. 안은미 씨가 올린 두 번의 공연에서 할머니들과 학생들은 일상에서 보는 날것 그대로의 춤사위를 무대 위에서 펼친다.
노영아 씨는 “예술적인 표현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한국 사회도 시기적으로 이제 그런 욕구들을 적극적으로 펼칠 때가 됐다. 많은 예술가들이 문화 강좌 강사로 활동하면서 일반인과 함께 공연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유의 하나”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