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김용택을 낳은 진메는‘시인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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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3일 03시 00분


진메마을 김용택 시인의 집. 맨 왼쪽이 서재 觀瀾軒(관란헌).
진메마을 김용택 시인의 집. 맨 왼쪽이 서재 觀瀾軒(관란헌).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의 ‘봄날’ 전문

섬진강시인 김용택. 그가 태어난 동네는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이다. 섬진강댐으로부터 약 8km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정년퇴임(2008년 8월 31일) 하기 전까지 아이들을 가르쳤던 덕치초등학교와는 2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가 처음 부임했던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는 댐으로부터 16km 아래다.

진메는 섬진강 상류의 강마을이다. 바로 코앞에 강물이 흐른다. 마을 아이들은 폴짝폴짝 징검다리를 건너 학교를 오갔다. 강물은 옥정호 섬진강댐 수문에서 흘러내려온다. 지난해처럼 옥정호가 넘실거려 수문을 활짝 열기라도 하면 댐 아래 진메 천담 구담마을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자칫 마을이 물에 잠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집중호우에 휩쓸린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진메마을∼(4km)∼천담∼(2.7km)∼구담∼(1.68km)∼장구목’에 이르는 섬진강길(8.38km)은 매화꽃 길이다. 해마다 3월 25일쯤이면 온통 매화향기에 꽃멀미가 난다. 구례∼하동 섬진강길 못지않다. 오히려 사람의 발길이 적어 한갓지다. 오붓하게 맘껏 즐길 수 있다.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구담마을 느티나무언덕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 나온 곳이다. 산과 강 그리고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마을들이 오목조목 정겹다. 시인의 말처럼 ‘눈곱만큼도 지루하지 않고, 서럽도록 아름답다’.

진메는 역시 ‘시인의 마을’이다. 마을사람 모두가 시인이다. 동네입구 고추밭 가장자리에 세워진 ‘사랑비’를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자란 7남매가 아버지 어머니를 기려 세운 자그마한 빗돌 하나. 그 고추밭은 부모님이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늘 땀을 흘리셨던 곳이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막내더러 “네가 취직하면 주말마다 술병 들고 진메에 내려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막내가 막상 취직했지만,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막내는 첫 월급 타던 날 통장을 하나 따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통장에 매달 어머니 속옷 값, 약주 값, 겨울외투 값, 용돈으로 차곡차곡 넣었다. 결국 그 쌓인 돈이 ‘사랑비’가 되었다.


‘월곡양반·월곡댁/손발톱 속에 낀 흙/마당에 뿌려져/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어머니 아버지/가난했지만/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일곱 자식들이 부모님께 바치는 사랑비)

진메마을 입구엔 두 그루의 늙은 둥구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 느티나무를 지나 안쪽으로 좀 걸어가면 김용택 시인이 태어난 집이 나온다. 봄날 시인의 집은 고요하다. 정갈하고 아늑하다. 시인은 없고, 그의 늙은 어머니도 보이지 않는다.

시인의 서재 ‘觀瀾軒(관란헌)’ 툇마루에 앉는다. ‘섬진강 물결을 지그시 지켜보는 마루’라는 뜻인가. 강 건너 봄빛이 자글자글하다. 사상계,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문학사상…. 누렇게 빛바랜 옛날 잡지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참 열심히도 살았구나! 시 한편 캐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수많은 밤을 뒤척였을까. 아, 시인이여! ‘토씨 하나 찾아 천지를 도는(진이정 시인)’ 자여!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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