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그래, 혼잣말이 많은 것도 건어물녀의 특징이야. TV에 신호를 보내거나 고양이한테 말을 걸거나.”
―‘호타루의 빛’, 日 NTV 》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절대 나에 관해 밝히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 (그것도 두 마리!) 몇 번 얘기를 해봤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이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다. “어머 정말요?”(눈을 크게 뜨고) “네?!”(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오….”(외계 생물을 보듯) 이미 날 알던 사람이야 상관없지만 새로 알게 된 사람은 최소한 서너 번은 만나야 고양이 얘기를 하게 된다.(영원히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예전부터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였지만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다르다. 믿거나 말거나 고양이에 관한 서양 격언엔 이런 것들이 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조심하라’(아일랜드 속담) “비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그것은 고양이와 음악이다.”(알베르트 슈바이처) 일본에서의 고양이 이미지는 가게 앞에 두는 복(福)고양이 장식품이나 헬로 키티 같은 캐릭터, 수많은 고양이 관련 상품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좋은 이미지도 ‘여성’과 결합하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다. ‘어떤 할머니가 고양이 수십 마리를 키우다 홀로 죽었는데 고양이가 그 시체를 뜯어 먹었다더라…’는 서양의 도시전설, 상당히 익숙하다. 심지어 ‘캣 레이디’라는 단어까지 있다. 정의는 ‘혼자서 고양이 여러 마리를 키우며 살고, 고양이 소변 냄새가 나는 나이 많은 여자’다. 고양이를 너무 사랑해서 사진 찍고 비디오 찍고 고양이와 모든 물건을 공유하고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은, 그런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호타루의 빛’을 보니 일본에서도 이건 마찬가지인 듯하다. ‘건어물녀’란 직장에서는 멋진 오피스 레이디지만, 퇴근하면 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맥주와 건어물 안주를 벗 삼으며 연애 따위 안중에도 없는 여자를 말한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말동무는? 고양이!!! 드라마 주인공 호타루는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동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대화를 하는 것이 퇴근 뒤의 낙이다.
우리나라에도 고양이 애호가가 늘다 보니 대중문화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영화 ‘화차’나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에서는 모두 고양이가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다행히 위에서 열거한 부정적 이미지로 나오지는 않지만 역시나 두 작품 모두 ‘혼자 사는 여자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설정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처음 고양이를 키울 때 여럿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 어디 가서 고양이 키운다고 말하지 마! 평생 연애 못해!”(친구들) “아, 결혼… 안할 거니?”(부모님 및 어른들) 거기다 이런저런 ‘고양이+여자=별종’ 식의 문화적 코드를 접하다 보니 이젠 나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주말 아침 고양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망중한에 잠겨 있다가도 문득 ‘나 진짜 문제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강아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산책시키다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수단’으로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도 덧붙이면, 이건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행이라면 다행은, 내 주변엔 고양이 키우면서도 남자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건 물론이고 애까지 낳고 잘만 사는 사람도 꽤 있다는 거다. 게다가 (드라마이긴 하지만) 호타루도 훈남을 양손에 쥐락펴락하며 연애에 성공하지 않았는가. 오늘도 고양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생각한다. ‘설마 혼자 죽진 않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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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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