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명이 사는 도시 런던은 단지 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끄는 도시다. 평범한 시내버스 안에서도 10개 언어를 들어볼 수 있다는 도시. 대문호 찰스 디킨스는 런던을 가리켜 ‘후대에 물려줄 특별한 기자와 같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후 기자이자 소설가인 존 란체스터는 ‘Capital’이란 제목으로 이 특별한 도시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를 써냈다.
가상의 인물들로 구성한 소설이지만, 란체스터는 논픽션에 비유될 만큼 생동감 있는 묘사로 런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남런던의 한 작은 거리인 페피스 로드. 19세기 후반 이곳의 주민들은 주로 서민이었다.
그러나 소설이 시작되는 2007년 12월경 이곳 부동산 가격은 높이 뛰어 있었고, 주택 소유주들도 모두 부자가 됐다. 2008년 말 유럽을 강타한 경제위기 이전에는 런던의 집값이 매년 꾸준히 오르기만 했기 때문이다. “페피스 로드에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첨확률 100%인 카지노에 있는 것과 같았다”라는 소설 속 문장은 런던에서 10년 이상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다문화 다인종의 상징인 런던을 잘 반영하듯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페피스 로드의 주민들과 이곳에서 목수로 일하는 폴란드인 남자, 보모로 일하는 헝가리인 여자, 유명한 세네갈인 축구 선수, 정치 망명자인 짐바브웨 출신 여자 등이다. 소설이 진행되며 독자들은 그들이 한때 꿈꿨던 장밋빛 인생이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페피스 로드에 예전부터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부자가 된 집 주인들과 매일같이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타국에서 설움을 겪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던 중 2008년 11월 영국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경제위기가 닥치고, 경제위기 속에 이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뒤흔들리게 되는데….
가디언지와 텔레그래프지가 ‘논픽션을 읽듯 생생한 묘사’라고 칭찬했듯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실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동유럽이 유럽연합에 속하면서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꿈과 돈을 좇아 런던으로 왔다. 본국에서 교사, 회계사, 회사원 등의 견실한 직업을 갖고 있던 이들은 런던에서는 택배 배달부, 청소부, 가정부 등의 일을 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많은 폴란드인들이 런던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것은 영국 언론들이 비중 있게 다룬 큰 화제였다.
작가는 다양한 인종들을 품고 있는 이 멜팅 폿(melting pot·용광로)이 2008년 11월을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그려나간다. 머나먼 나라 영국 수도의 이야기지만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수도, 서울을 가진 한국인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올 이야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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