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완전히 동물원에 온 기분이다. 죽어서 가죽만 남긴 동물들에겐 미안하지만 화려한 무늬에 윤기가 자르르 도는 가죽들을 보니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곳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가죽골목에 있는 한 특수가죽(특피) 전문 판매장.
특피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나 양가죽이 아닌, 특수한 동물의 가죽이란 뜻이다.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악어와 타조, 뱀이 그 중 나름 ‘인지도’가 있다. 국내에서 특피가 유통된 것은 꽤 오래전부터. 그러나 본격적인 인기몰이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독자 브랜드로 특피 제품을 생산하는 이자경 무디 대표는 “명품 소비의 경험이 쌓이면서 소비자들의 보는 눈이 높아진 게 특피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특피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럽고도 세련된 무늬와 희소성. 무게가 많이 나가 가죽을 깎아 써야(피할) 하는 소가죽과 달리 무게도 가볍다.
특유의 견고함과 내구성 덕택에 관리만 잘하면 평생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 게다가 오래 써도 낡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빈티지한 느낌이 더해진다. 이혜경 무디 디자이너는 6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구입한 뱀가죽 핸드백을 지금도 쓰고 있다. 손잡이 부분의 색이 약간 변한 것 외에는 새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씨는 “뱀이나 악어가죽은 무광 가공을 했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윤이 난다”며 “그래서 매장에서 몇 달 묵은 제품이 신제품보다 더 인기 있을 때도 많다”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특피는 소나 양가죽에 비해 브랜드를 ‘덜 타는’ 편이다. 성수동 대원특피 판매장의 박준영 대리는 “가죽에 대한 지식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의 관심이 소재 자체에 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명품 가방 값이 지속적으로 오른 것도 특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데 한몫했다.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부티크 제품을 살 경우 유명 메이커의 소가죽 제품 가격에 훨씬 비싼 소재의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에서의 얘기다. 특피의 단점은 값이 워낙에 비싸다는 점이다. 원재료가 흔하지 않은 데다 가공도 일본이나 이탈리아에서 하는 탓이다. 심지어 본격적인 제품 생산에 앞서 샘플을 만드는 작업도 소가죽이나 양가죽으로 먼저 할 정도다.
현재 국내에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종로구 숭인동의 가죽골목, 중구 신당동 골든타운 등에 특수 가죽을 파는 점포들이 있다. 일부 점포는 연계된 공장에서 만든 가죽 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팔기도 한다.
다음은 현재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특피의 종류와 특징이다.(현재 시중에서 팔리는 특피는 대부분 합법적으로 사육한 개체에서 나온 것들로, 유통이 엄격하게 관리된다. 자연산 특피는 점점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악어가죽=특피 중에서도 가장 비싸다. 예전부터 고급 가죽의 대명사였으며 지금도 소비자의 선호도가 가장 높다. 다른 가죽은 평(가죽 한 평은 가로 세로 약 30cm) 단위로 가격을 매기지만 악어가죽만큼은 가격 책정을 cm² 단위로 한다. 악어의 크기가 커질수록 단위면적당 가격이 비싸지는 것도 특징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악어가죽은 크게 아프리카산(크로커다일)과 동남아산(카이만) 2가지다. 동남아산보다는 아프리카산을, 등가죽보다는 뱃가죽을 고급으로 친다. ‘표준 크기’(가로 30∼35cm)의 핸드백을 만들려면 폭 40cm 내외의 작은 악어가죽 2장이 필요하다. 유명 브랜드 제품은 1000만 원 이상, 중소기업이나 부티크 제품은 350만∼600만 원을 호가한다. 타조가죽=일반적으로 모공이 톡톡 튀어나온 독특한 모양으로만 유명하지만 의외로 질기고 강하다. 상업용으로 쓰는 가죽 중 강도가 코끼리가죽 다음이란 평가를 받는다. 타조는 덩치가 커서 가죽 1장이 지름 1m의 원탁을 다 덮고도 남는다. 표준 크기의 여성용 핸드백을 만드는 데 가죽 1장이 통째로 들어가는데, 모공의 무늬(퀼 마크)를 강조할 때는 2장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염색이 잘되고, 특히 파스텔 톤이 아주 예쁘게 나온다.
보통 사람들은 타조의 몸통 가죽만 있는 줄 알지만 발 가죽도 많이 쓴다. 닭발을 크게 확대한 것 같은 타조의 발 가죽은 독특한 무늬와 강한 내구성이 특징이다. 타조는 가시덤불을 밟아도 멀쩡하게 잘 걸어 다닐 수 있다. 타조 발 가죽은 액세서리나 구두용으로 많이 쓰이며 간혹 가방으로 만들어 파는 경우도 있다. 특피 중에서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는 게 장점.(성수동에서 장당 1만∼2만 원)
뱀가죽=가벼우면서도 질기고 무늬가 화려하다. 염색도 손으로 해 다양한 색상과 문양 표현이 가능하다. 가죽을 이용하는 뱀은 세계적으로 2600여 종이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아프리카산 비단뱀(파이톤)이나 동남아산 ‘물뱀’(가죽업계에서 스네이크라고 불림) 가죽이 유통된다. 뱀의 경우에도 아프리카산이 더 고급으로 평가받는다. 강도가 소가죽만큼 강하고 염색이 잘되기 때문이다. 물뱀가죽은 내구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뱀가죽은 호오(好惡)가 많이 갈리지만 의외로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참, 특피 매장에 전시된 뱀의 크기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보통 250cm에서 350cm, 크게는 5m 정도 되는 것도 있다. 쓸모가 없는 머리와 꼬리 부분을 잘라낸 게 이 정도다.
코끼리가죽=동물원에서 보는 코끼리 피부의 모양과 질감을 상상하면 된다. 상당히 두껍고 질기다. 앞에서 말했듯이 상업용으로 쓰는 가죽 중 가장 강도가 높다. 가방이나 오토바이 안장을 만드는 데 쓰이지만 요즘은 수입이 거의 안 된다. 현재 유통되는 물량은 예전에 수입된 것들이다. 물개가죽=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모두 있다. 털이 부드러운 것으로 유명하며 길쭉한 무늬가 특징이다. 최근엔 코끼리가죽과 더불어 시장에서 점점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러시아 등이 환경운동 차원에서 물개가죽 수입을 금지한 이후 물개 사냥이 사양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상어가죽=어류라 가죽이 미끈할 것 같지만 의외로 스웨이드(부드럽게 부풀린 가죽) 느낌이 난다. 강도도 강한 편. 핸드백 제품이 많으며 벨트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도마뱀가죽=독특한 비늘 모양의 반점과 섬세한 무늬가 특징이며 견고하다. 크기가 작아 소품용으로 주로 쓰인다.
■ 특피 고르는 법
어떤 가죽이든 중간선(등 부분)을 중심으로 무늬가 대칭을 이루는 것이 좋다. 타조의 경우 털 뽑은 자리(모공)가 크고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게 좋은 가죽이다. 요즘은 소가죽에 특피 무늬를 프린트하는 경우도 많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잘 만든 악어무늬 프린트 가죽은 전문가들도 진품과 헷갈려 할 정도.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제품을 보며 안목을 높이고 신뢰할 만한 곳에서 가죽 제품을 구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 가죽 가방 보관법
습기를 피하고, 가방 안에 신문지를 넣어 원래 형태를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보관해야 한다. 옷장에 그냥 구겨 넣으면 가죽이 달라붙을 수 있다. 달라붙은 가죽을 떼어내면 자국이 남는다. 신문지는 습기를 없애주는 역할도 한다.
글=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사진=김미옥 기자 salt@dong.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