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도자기들은 신부님께서 직접 만드신 작품으로 현재 99개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경기 하남시 망월동에 위치한 구산성지(한국 순교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이 묻혀 있는 곳. 천주교 박해 기간 동안 신자들이 숨어들어 살기도 했으며, 많은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함)에 들어서자 성모상 앞에 꽂아둔 작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밑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말이 이어져 있었다. “몇 개가 없어져 지금은 99개까지는 안 될 것 같은데…. 도자기 하나하나에 다 숨은 뜻이 있어요.” 2001년 1월부터 구산성지에 머물고 있는 정종득 신부(53)가 웃으며 말했다. 》 ○ 새우젓 팔던 신자들 형상화한 항아리
“이 도자기 디자인은 ‘천주성교일과(天主聖敎日課)’라는 한문 기도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A4 용지 크기의 노트를 넘기자 나타난 그림. 십자가 위에 다섯 개의 동그라미가 놓여 있고, 원 안에는 ‘용덕(勇德)’ ‘근덕(勤德)’ 등 다섯 가지 덕이 적혀 있었다. 오래된 좋은 습관을 뜻하는 ‘덕’이라는 글자에 기도서에 등장하는 가르침을 결합했다. 5란 숫자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과 함께 예수님이 피를 흘렸던 다섯 가지 상처를 상징한다.
노트를 한 장 더 넘기자 ‘천국의 열쇠’를 비롯해 각양각색의 도자기 디자인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여주에 내려가 디자인 노트에 그려져 있는 도자기들을 굽는다. 정 신부는 “900개의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성지 정문 위에 설치해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산성지 곳곳에는 동그랗고 파란 도자기를 얹어놓은 회색 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저것들은 새우젓 장사꾼들을 형상화한 거예요.”
약 100년 동안 이어졌던 천주교 박해 기간(1780년대∼1890년대) 동안 경인 지방의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새우젓 파는 사람이 많았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가 편했기 때문이었다.
“박해 속에서 신음했던 선조들의 신앙생활을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죠. 그분들의 행적이나 기록도 많이 사라졌고요. 그런 모습들을 다시 재현하고 싶은 거예요. 직접 만들지는 않았고, 디자인만 제가 했어요.”
항아리와 도자기의 색깔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회색은 새우젓을 삭히면 나타나는 색으로 신앙도 그만큼 원숙해져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파란색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이다.
2만6400m²(약 8000평)에 달하는 구산성지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조형물들에는 저마다 그의 숨겨진 뜻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12년 전 처음 그가 이곳에 왔을 때의 성지는 지금과 모습이 많이 달랐다. “주변의 상추밭들 때문에 파리가 많아 난지도에 온 줄 알았어요.”
○ 뿌리와 정신이 담긴 디자인
놀랍게도 그는 단 한 번도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딱히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교구청에서 교육 담당 차장을 하며 어떻게 하면 신자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뿐이다. 좀 더 보기 좋고 이해하기 쉬운 교리, 교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았던 최덕기 주교가 성지 담당 신부 자리를 추천했다. 정 신부는 일반 신도들이 순교자들의 향취를 듬뿍 느끼고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디자인을 시작했고, 성지를 꾸며 나갔다. 1998년부터 5년 동안 매주 월요일이면 유명 사찰을 비롯한 유적지를 찾아 다녔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옛 문화가 많잖아요. 문화라는 것이 사실은 삶의 총체적인 양식인데, 그런 것들이 많이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기도 했어요. 후손들에게 옛 문화를 전달해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의 노트엔 천주교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디자인들도 간혹 들어 있었다. 십자가 위에 정한수 한 그릇이 놓여 있는 그림이 눈에 띄었다. 저녁 달빛이 비친 물을 떠와 빌었던 옛 여인들의 정성을 담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실물로 만들지는 못했다.
구산성지 성모상 뒤쪽으로 마련된 큰 공터에는 12사도를 담은 우리 전통 솟대가 솟아 있고, 성당 내부도 앉아서 미사를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성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붉은색 벽돌들은 그가 성지 안쪽에 있는 가마터에서 직접 구웠다.
“전통적인 것을 가져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옛 사람들도 절대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그들은 그 절대자가 정확히 누구인지를 몰랐던 것이고, 신부인 저에게는 그 절대자가 하느님이신 거죠.”
성당 창문들도 하나도 같은 모습이 없었다. 육모 방망이, 붉은색 포승줄, 철편 등이 액자 역할을 하는 큰 창문틀 안에 들어 있었다. 박해를 받았던 시절 신자들에게 사용됐던 형구(形具)들이다. 성지 안에 그가 감춰둔 비밀들이 실타래처럼 하나둘씩 풀려나갔다.
“교회사를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으니까 디자인도 그런 의미들을 담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뿌리나 정신이 없는 디자인은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그런데 원래 이게 신부의 본업은 아니라서…. 이제 디자인은 그만하고 올해부터는 본업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죠. 하지만 이게, 디자인이 재미나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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