半: 반 반 部: 떼 부 論: 논할 논 語: 말씀 어
治: 다스릴 치 天: 하늘 천 下: 아래 하
“半部論語治天下.” 송(宋)대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등장하는 말로, 재상 조보(趙普)가 태종(太宗) 조광의(趙光義 또는 趙匡義)에게 아뢴 것이다. 조보는 곧장 이어서 말했다. “신이 평생 아는 바로는 정녕 이 말을 벗어나지 않으니, 옛날 ‘그 책’의 절반으로 태조(조광윤·趙匡胤)를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게 하였고, 지금은 그 절반으로 폐하를 도와 태평성대에 이르게 하겠습니다(臣平生所知,誠不出此,昔以其半輔太祖定天下,今欲以其半輔陛下致太平).”
산둥(山東) 출신인 조보는 학자 타입이 아니었다. 논어 외에는 별로 읽은 책도 없는 그가 재상이란 중책을 연이어 맡게 되자 주변의 입방아에 올랐다. 괴이한 생각이 든 태종이 하문하자, 이렇게 입장을 밝힌 것이다.
조보는 절도사 출신의 조광윤 휘하에서 송 건국의 핵심 전략가로 활동했다. ‘송’이라는 국호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고, 태조의 그림자로 재상까지 되었다가 태조 사후에도 동생 조광의의 치하에서 여전히 재상직을 유지했다.
논어로 창업(創業)과 수성(守城)이 가능하다고 말한 그는 과연 송대 초기 문치주의 확립을 이끈 재상답다. 권력 유지를 위한 법가의 제왕학이 아니고 확고한 문치주의의 기틀을 위해 오직 논어로 대변되는 유학이 집권(執權)과 통치(統治)의 지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조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서가에서 나온 단 한 권의 책이 논어였다고 한다. 논어라는 책의 가치와 현실적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준다.
최근 논어 열풍이 거세다. 논어는 배움과 교우관계, 예절, 입신, 효도, 치국의 방법 등에 대한 공자의 촌철살인의 어록이 담긴 책이다. 혼란과 불확실성의 이 시대에 과연 그 말들이 얼마나 유용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 절반만이라도 말이다.
※오늘부터 김원중 건양대 교수의 ‘한자로 읽는 고전’을 새로 연재합니다. 그동안 ‘한자 이야기’를 써주신 심경호 고려대 교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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