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스 라이크 재거, 트러블 메이커, 그리고 휘파람. 4월 2일 목요일. 봄비. 트랙#3 - Andrew Bird ‘Oh No’
어제 오후, 서울 마포역과 공덕역 사이 대로변에서 세게 넘어졌다. 신호등 바뀌기 전에 길을 건너려고 냅다 뛰다 발이 걸렸다. 많이 창피했다. 앞으로 철퍼덕 엎어진 데다 백팩까지 메고 있었으니 심지어 초등학생 같았을 것이다.
그 순간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휘휙휘휘 휙휘휘휘∼. 니 눈을 보면 난 트러블 메이커∼. 손가락을 튕기는 박자에 맞춰 멋스럽게 일어선 나. 입을 동그랗게 오므려 휘파람을 휙휙 불다 날렵하게 일으킨 몸을 한바퀴 빙그르. 행인들은 주말의 마지막을 후회 없이 불태우려는 듯 박자에 맞춰 나와 함께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는 건 내 머릿속에만 잠시 떠오른 상상이었다. 휘파람 소리는 마침 내 옆을 지나던 꼬마의 입에서 나온 거였다. 달리는 자전거 뒷좌석에서 날 내려다보며 ‘휘이익’. 오, 마이 스타일.
휘파람은 여유의 상징도, 희롱의 표현도 된다. 지난 연말 포미닛 현아와 비스트 장현승이 함께 불러 히트한 노래 ‘트러블 메이커’와, 최근 CF에 삽입돼 발매된 지 1년이 지난 요즘 불현듯 최고 인기 팝송으로 떠오른 마룬5의 ‘무브스 라이크 재거’엔 공통점이 있다. 도입부의 휘파람 멜로디가 강력한 후크로 탑재돼 있다는 거다.
‘트러블 메이커’의 휘파람은 신사동호랭이와 함께 곡을 만든 작곡가 라도가 직접 불어 삽입한 것. ‘무브스 라이크 재거’의 휘파람 소리 주인공은 음반사에 문의했더니 ‘잘 모른다’더라.
미국 시카고 출신 싱어송라이터 앤드루 버드는 휘파람 달인으로 유명하다. ‘버드’라는 성에 걸맞게 음반과 공연에서 들려주는 그의 휘파람은 새의 노래처럼 절묘하다. 영화 ‘세인트 클라우드’에도 삽입된 ‘오 노’는 한 번에 각인되는 휘파람 멜로디를 지닌 곡이다. 여기서 휘파람은 여유나 멋스러움보다는 쓸쓸함을 환기시킨다. 그의 새 앨범 ‘브레이크 잇 유어셀프’가 지난주 빌보드 앨범차트 10위로 데뷔했다.
마포에서 ‘트러블 메이커 환상’에 사로잡혔던 건 아마 지난 연말 본 웹툰 ‘패션왕’의 패러디 장면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인공 우기명이 좋아하는 박혜진과 함께 쓰레기통과 쓰레기 봉투를 소품으로 안무를 했던 그 장면.
결정적으로 난 휘파람을 진짜 못 분다. 연습 좀 해야겠다. 다음번에 길바닥에서 일어날 땐 좀 불어야겠으므로. 곡목은 ‘무브스 라이크 재거’가 알맞겠다. 어제 오른 손바닥을 땅에 짚으며 입은 바둑알만 한 찰과상 탓에 지금 자판 두드리는 손이 몹시 쓰리다. 스페이스바 누르기가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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