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아내와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마티유(이반 아탈)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고향으로 향한다. 거리에서 우연히 15년 전 헤어진 첫사랑 마야(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시)를 만난 마티유는 ‘품절녀’가 된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집에 돌아와 마야의 전화를 받은 마티유는 한달음에 그녀의 집으로 달려가 뜨거운 순간을 나눈다.
파스텔 톤의 첫사랑을 끈적한 불륜으로 이어가는 남녀는 점점 서로에게 집착한다. 마티유는 아내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궁리하는 데 몰두하고, 마야는 적극적인 마티유에게 계속 끌려다닌다.
19일 개봉하는 ‘리그렛(regrets)’은 건축가와 첫사랑, 재회, 오해 등의 수식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건축학 개론’과 여러모로 닮았다. “15년 전 그날 왜 날 떠나버린 거예요?” “그날 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 마티유와 마야가 나누는 대화마저 사소한 오해로 헤어진 ‘건축학 개론’의 사연과 꼭 닮았다.
하지만 영화는 제목처럼 후회와 집착에 초점을 맞춘다. 엘리트 건축가인 마티유는 직장과 아내를 포기하고 불륜에 매달린다. 성애와 그리움 사이에서 혼돈에 휩싸인 그는 광기어린 모습으로 관객을 흡입한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기억이다. 마티유가 어머니의 집에서 발견한 어릴 적 조막손으로 그린 그림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담은 사진들이 첫사랑의 기억과 섞여 그를 점점 옭아맨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기억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1994년 칸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으며 ‘권태’ ‘붉은 빛’ 등을 연출한 프랑스 세드리크 칸 감독의 작품이다. 하지만 ‘권태’에서 봤던 파격적인 노출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실망할지 모른다. ‘권태’의 육체적 언어 대신 ‘리그렛’은 정신적 고백으로 가득 차 있다. 액션 영화처럼 빠른 속도감이 돋보이는, 오랜만에 만나는 수작 격정 멜로다. 다만 이야기의 전개가 온통 남성의 관점이라 여성 관객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불나방처럼 파멸로 달려가는 마티유에게 감정이입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남성의 뇌구조가 궁금한 여성에게 권할 만하다. 18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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