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국공연 앞둔 레이디 가가의 ‘스타일 파워’
번 돈 의상에 퍼붓는 그녀, 서울서 공개할 깜짝 패션은 뭘까
4월 1일 미국의 한 온라인 매체는 ‘레이디 가가, 이번 투어에서 정상적인(normal) 옷을 입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주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2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본 디스 웨이 볼(The Born this way Ball)’ 투어 첫 무대에서 가가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기로 했다.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가가는 트위터에 ‘사람들이 나의 괴짜 패션을 가지고 놀리는 게 싫다. 음악으로 존경받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가가가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오른다면? 그 자체로 뉴스가 된다. 관객들은 가가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환불을 요구할 것이고 대중은 ‘평범해진 가가’에게 흥미를 잃어버릴지 모른다.
다행히 이 기사는 만우절 거짓말이었다.
2월 공개된 투어의 포스터를 보면 가가가 청바지를 입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먹구름 가득한 중세의 성을 배경으로 가가는 검은색 눈 화장을 한 채 음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언론들은 가가가 고딕 스타일을 선보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 조금씩 예상을 비켜 나갔던 그의 파격은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 영상물심의등급위원회는 이 공연에 ‘18세 미만 관람 금지’ 판정을 내렸다. 표면적으로는 선정적인 일부 가사를 근거로 삼았지만, 예측 불가능한 도발이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대중은 더 궁금해지는 법.
가가, 대체 무엇을 입고 나타날 거니.
Why-왜 그에게 빠질까 신장은 155cm. 빼어난 미인은 아니다. 다부진 몸매와도 거리가 멀다.(10대 시절 거식증을 앓았던 그는 한때 위스키를 마시며 살을 빼는 다이어트를 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옷걸이. 가가가 걸치면 오묘한 패션이 완성된다. 이유는 뭘까.
가가의 패션은 최악과 최고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세상을 경악하게 하는 엽기패션도 어느샌가 예술로 평가받는다.
생고기 드레스가 그랬다. 2010년 9월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가가는 생고기 드레스를 걸친 채 등장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이럴 수가”였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그를 비난했다.
이틀 후인 14일 영국 방송 BBC는 여성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을 취재해 ‘고기 드레스에 대해 5가지 가능한 분석’을 실었다. ‘레드카펫 위에서 붉은 고기를 통해 패션계 관행에 대한 반기를 들었다’는 해석부터 ‘동물 보호를 외치며 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위선을 비판’ ‘여성을 육체로만 판단하는 시선에 대한 조롱’ ‘육신의 나이 듦과 부패에 대한 표현’ 등이 이어졌다. 물론 ‘아무 의미도 없는 생각 없는 행동’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존재했다.
이후 생고기 드레스를 만들었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는 단숨에 주목받았다. 이 드레스는 대학가 핼러윈 파티 때 인기 복장으로 떠올랐고, 시사 주간지 타임은 고기 드레스를 ‘올해의 패션’으로 선정했다.
불붙인 담배를 이어붙인 선글라스, 알몸에 겹겹이 두른 노란 ‘접근금지 테이프’ 등 가가가 기괴한 스타일을 선보였을 때도 사람들은 각종 의미를 부여하며 그의 패션을 포장했다. 또 어김없이 “가가는 정말 영리하다”는 찬사를 보냈다. 전문가들은 가가가 단순한 패션 아이콘을 넘어서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배드 테이스트(bad taste)’ 때문이라고 말한다. 배드 테이스트는 너무 기괴하고 외설적이어서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강한 캐릭터로 영감을 주는 스타일. 한마디로 이상한 것에 끌리다 보니 그럴듯한 해석까지 하게 된다는 얘기다.
What-무엇이 그를 미치게 할까
가가는 “나는 의상을 입기 위해 노래를 만든다”고 말해 왔다. 곡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무대에서 입고 싶은 의상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가의 집(the House of Gaga)’으로 불리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션 팀은 오직 그를 위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무대 이미지 등을 창조하는 드림팀.
‘가가의 집’ 홈페이지에는 ‘자동차 대신 퍼포먼스’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나는 노래를 지어 돈을 벌지만 콘도나 차를 갖고 싶지 않았다. 나의 쇼에 전 재산을 쏟길 원할 뿐이다.’ 지금도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은 가가는 번 돈의 전부를 의상과 무대에 쏟아 붓고 있다. ‘하이힐을 신지 않은 나의 모습을 남이 보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할 만큼 그에게 패션은 목숨처럼 소중하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레이디 가가’라는 예명을 얻기 전까지 그는 스테퍼니 조앤 앤젤리나 제르마노타였다. 사립 가톨릭 여자 학교를 다니던 스테퍼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읽는 문학소녀였고 학구적이고 규칙을 따르지만 뭔가 불안정한 학생이었다고 가가는 회상했다.
평범한 스테퍼니가 비범한 가가로 변했던 건 집단따돌림의 영향이 컸다. 그래서 혹자는 “가가가 ‘왕따’였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패션을 일종의 보호색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가가가 ‘패션 카멜레온’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각종 디자이너와의 친분도 가가의 혁신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음악적 영감을 주는 그의 뮤즈.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알렉산더 매퀸이나 휘세인 찰라얀과도 영향을 주고받았다.
‘가가의 집’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 니콜라 포미케티는 ‘미스터 가가’로 불릴 정도로 현재 그의 패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자란 그의 배경이 한계를 규정짓지 않는 가가의 패션과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다. 2009년 첫 내한 때 가가에게 의상을 제공했던 디자이너 이주영 씨는 “당시만 해도 가가는 여러 나라의 디자이너와 작업했지만 요즘에는 ‘가가의 집’이 의상을 전담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포미케티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Who-누가 그를 따르나 미국의 한 패션매체에는 여러 사진이 실렸다. 케이티 페리부터 리애나, 비욘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내로라하는 팝스타들의 외모 변천사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모습이 가가의 독특한 스타일로 점점 변하고 있다는 것.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안 된다”며 가가를 무시했던 아길레라도 ‘가가화’되고 있다. 롤링스톤지는 “마일리 사이러스와 아길레라가 가가를 따라 하느라 음악까지 망쳤다”고 평했다. 비욘세가 뮤직비디오에서 가가가 쓰던 검정 선글라스와 페티시 룩을 입자 한 언론은 ‘가가가 영향을 끼친 나쁜 예’라고 표현했다.
차마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은 ‘극단적인’ 가가의 스타일이 다른 스타들을 넘어 대중화되고 있다. 국내에서 개그맨이나 일부 가수들이 패러디의 소재로 활용해 오다 최근에는 하나의 패션 스타일로 정착되는 듯하다. 점점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연예계에서 가가의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다만 번 돈의 전부를 의상과 무대에 쓰는 가가의 정신도 함께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27일 공연을 앞두고 가가는 지금도 ‘가가의 집’에 사는 디자이너들과 또 한 번의 파격을 모의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