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애벌레처럼 가는 길이 있다 땀 흐르던 그 길의 저기쯤 마을이 보이는 어귀에는 오래 묵은 당산나무 귀신들이 수천 천수 관음의 손을 흔들며 맞이해서 오싹 소름이 서늘한 길이 있다
두리번두리번 둘레둘레 한눈을 팔며 가야만 맛을 보여주는 길이 있다 더운 여름날 쫓기듯 잰 걸음을 놓는 눈앞에는 대낮에도 백년여우가 홀딱홀딱 재주를 넘으며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무시무시한 길이 있다
서어나무 숲이, 팽나무 숲이, 소나무 숲이, 서걱서걱 시누대 숲이 새파랗게 날을 벼리고는 데끼 놈, 게 섯거랏 싹뚝, 세상의 시름을 단칼에 베어내고 도란도란 낮은 산길이 들려주는 이야기 작은 산골마을들이 풀어놓은 정겨운 사진첩
-박남준의 ‘지리산에 가면 있다’에서 참 좋구나! 봄날 지리산 자락은 어딜 가도 좋다! 숲도 땅도 하늘도 바람도 모든 게 살갑다. 가는 곳마다 꽃동네 꽃대궐. 어찔어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햇살이 다북다북 온갖 여린 꽃망울들을 어루만져, 배시시 꽃잎을 열게 한다. 뿌윰한 연무가 뻣뻣하고 완강한 흙덩이를 으늑하고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우두둑! 두둑! 손가락 뼈마디 푸는 소리. 저 멀리 하늘이 까무룩하다.
지리산 둘레길 구례구간(오미마을∼밤재 52.5km)은 아득한 천하 명당길이다. 산과 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묵 배미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산다. 마을은 산자락에 은근슬쩍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불쑥불쑥 섬진강 기슭에 진을 치곤 한다. 고래실논과 기름진 밭은 노란 산수유꽃과 맑은 매화꽃 향기와 버무려져 탱탱하고 자르르하다.
구례구간은 남원에서 넘어오는 밤재(해발 490m)에서 시작해도 되고,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雲鳥樓)에서 출발해도 된다. 밤재에서는 내리막이고, 운조루에서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운조루는 남한 3대 길지의 하나. 이른바 ‘금가락지 명당’이다. 앞에는 너른 들판이 있고, 그 너머엔 다섯 봉우리가 우세두세 서 있다.
운조루엔 명문가 문화 류(柳)씨의 ‘더불어 베풀며 살았던’ 뒤주가 남아 있다. 행랑채에 쌀 두 가마 반이 들어가는 나무뒤주를 놓아두고, 끼니를 이을 수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쌀을 꺼내 가도록 한 것이다. 아직도 그 뒤주 쌀마개엔 ‘他人能解(타인능해)’라는 글씨가 뚜렷하다. ‘아무라도 마개를 풀어 쌀을 가져가라’는 뜻이다. 운조루 대문 앞의 천리향과 뒤뜰의 청매화 향기가 유난히 가슴을 환하게 한다.
‘섬진강 자락 타고 내려온 물소리/시나브로 젖어드는 밤/어디서든 꽃 피고 지고 반복되지만/나의 꽃은 단 한 번/붉은 기운 속에 혼절한 사랑이었으면 한다’ ―황구하의 ‘운조루의 봄밤’에서
산동네마다 한적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들판에 나가 농사일로 바쁘다. 벌들이 잉잉거리며 돌담길 노란 산수유꽃에 코를 박고 있다. 붉은 동백꽃 모가지가 통째로 부러져 땅바닥이 어지럽다.
둘레길은 상대마을 한울농장(010-2965-2107)도 가로질러 간다. 한울농장은 산기슭(5ha) 감나무 농장. 끝없는 감나무 밭 가운데 한 무더기 매화나무가 화르르 꽃을 달았다. 여기저기 여린 두릅이 촉을 내민다. 누렁이가 건성으로 몇 번 짖는 시늉을 하더니 금세 제풀에 지쳐 버린다. 농장지기 한경민 씨는 “가을에 감이 열렸을 땐 그냥 몇 개씩 따 가시라고 하는데, 지금은 봄이라서 쑥 냉이 달래나 캐고 두릅이나 따 가시라고 한다. 매화꽃 구경도 괜찮다. 목마를 땐 얼마든지 목을 축이고 아픈 다리 쉬어 가시면 된다”며 해맑게 웃는다.
밤재 아래 현천마을 계척마을엔 산수유꽃이 이제야 난리법석이다. 수한마을 대숲 바람 소리가 쏴아! 쏴아! 시냇물 소리 같다. 구례읍 서시천 따라 노란 개나리 물결이 두세 겹으로 일렁인다. 봄비가 옹알이를 하며 간질인다. 풋! 봄이다.
‘지리산중턱을 에둘러 싼/저 안개 속으로/새 한 마리 빨려 들어간다/빈 하늘에/호르르 호르르/바람칼 나르던 소리만/물빛처럼 반짝인다/내 생애의/한 줄기 자드락길도/저 허리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참 이윽하다 ―허형만 ‘허리안개’ 전문 ▼ 680리 지리산 둘레길 내달 모든 구간 열린다 ▼
지리산 둘레길 전 구간이 마침내 5월에 열린다. 2008년 5월 전북 남원 매동마을∼경남 함양 금계마을(19.3km) 코스가 처음 열린 이후 4년 만이다. 현재 남은 구간은 남원 주천∼구례 밤재(약 5km)와 구례 오미∼하동 대축(약 59km) 코스 두 곳뿐. 결국 구례구간의 양쪽 끄트머리만 남은 셈이다. 이미 16개 구간(208.4km)에서는 둘레꾼들 발길이 잇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얼추 680여 리(약 272.4km). 3개 도(전남 경남 전북), 5개 시군(구례 하동 산청 함양 남원), 16개 읍면, 100여 개 마을을 거친다. 숲길(43.8%) 농로(20.8%) 마을고샅길(19.9%) 임도(14%) 도로(1.4%) 논둑길 밭둑길 고갯길 강변길.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약 209시간(시속 1.3km)쯤 걸린다. 하루 10km씩 느릿느릿 간다면 27일쯤 걸리는 셈이다. 때론 낮은 곳(구례 토지 50m)을 걷기도 하고, 때론 산꼭대기(하동 악양 형제봉 1100m)도 올라야 한다.
임현수 지리산둘레길구례센터장은 “지리산 둘레길은 실핏줄 같은 길입니다. 결코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건설한’ 길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의 발길이 닿아, 우리의 정서와 얼이 듬뿍 서린 곳이지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산자락 소통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리산 보고 빙그레 웃고, 지리산은 사람 보고 지그시 웃으며 살았습니다. 지리산 둘레길이 완전히 열린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잘 어우러져 살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그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어찌 보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지리산 둘레길은 ‘제1코스, 제2코스…’ 같은 이름이 없다. 순서 매김 대신 마을과 마을 이름으로 구간을 표시한다. 즉 ‘탑동∼밤재 구간’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지리산을 빙 둘러 에워싼 길. 할머니 얼굴의 주름살처럼 쭈글쭈글한 지리산 동그라미길. 아이들이 ‘동네 한 바퀴 돌며 놀듯 장난하듯’ 하며 걷는 고샅길. 굳이 출발점과 종료점이 필요 없다. 어디서 출발하든, 어디서 끝을 내든, 그건 오롯이 걷는 사람의 자유다.
황흐물 둘레길구례센터원은 “지리산 둘레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마을 민박을 해야 제대로 걷는 맛이 납니다. 주민들과 스킨십을 하다 보면 살가운 정이 새록새록 나기 마련이지요. 따지고 보면 마을 어르신들 모두 우리 부모님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오랜만에 ‘엄마표 밥상’을 받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도 사 갈 수 있고…. 얼마나 좋습니까”라며 웃는다. ▼ 매천사당 하얀 매화 고결한 선비의 혼 서려 ▼
구례(求禮)는 ‘예를 행하는 고을’이다. 매천 황현(梅泉 黃玹·1855∼1910) 선생이 바로 좋은 예다. 그는 광양에서 태어났지만 1886년 구례로 옮겨와 죽을 때까지 살았다.
매천은 가슴이 뜨거운 선비였다. 의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는 무능한 조선 조정에 절망했다. 그는 그의 말대로 ‘일찍이 조정을 위해 하찮은 공을 세운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조선왕조에) 굳이 죽어야 할 의리도 없었다’.
1909년 그는 서울 남산에 올라 한양 장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남산에 올라 한 번 굽어본 서울 땅/보는 것마다 더욱 처량하고 혼미하여라…/예전에 망한 나라가 다 이 모양이었던가/망한 것이 분명하니 슬플 수도 없구나.’
황현은 이미 그때부터 죽음을 생각했다. 그는 동생 황원(黃瑗)에게 ‘세상 꼴이 이와 같으니 선비라면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다. ‘만약 죽지 않는다면 매일 들려오는 비위 거슬리는 소리에 몸이 말라 비틀어져 죽을 것이니, 그렇게 죽는 거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910년 9월 10일 황현은 소주에 아편을 타서 마시고 눈을 감았다. ‘국가에서 500년 동안이나 선비를 길러왔는데, 나라가 망했는데도 어찌 죽는 선비 하나 없느냐’는 게 그 이유였다. 조선 선비로서 차마 그만둘 수 없어서 죽을 뿐이지 자신이 무슨 조정에 충성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창칼을 들고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죽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했다.
매천 선생의 글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선비의 고뇌’가 그대로 배어 있다. ‘선비로서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되기 참으로 어렵다’는 그의 절명시 구절에 가슴이 먹먹하다. 선생은 ‘인간의 도리를 어찌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수 있느냐’고 말한다. ‘책에서 읽은 진리를 어찌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떠들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결코 위로 하늘의 병이(秉彛·타고난 천성을 그대로 지킴)의 아름다움과 아래로 평소 읽은 책의 의미를 저버릴 수 없다.”
구례 매천사당(광의면 수월리)에 하얀 매화꽃이 피었다. 사당 밖 주차장, 사당 문밖 입구, 사당마루 옆에 있는 세 그루 모두 기품이 당당하다. 맑고 서늘하다. 향도 은은하다. 고고한 산림처사가 따로 없다. 영락없는 매천 선생 영정의 안경 너머 눈빛이다. “대한 사람들아, 모두 정신들 바짝 차려라!” 매천 선생의 준엄한 목소리. ‘매화꽃 향기 머금은 찬 샘물(梅泉)’에 머리를 헹군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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