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더라고요. 욕도 이렇게 화려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매번 깜짝깜짝 놀라요. 어떻게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욕들을 만들어 내는지….”
4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층의 한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을 둘러보던 이유숙 씨(29·여)가 말했다. 컴퓨터 옆에는 그녀의 이름과 ‘민주주의 꽃, 선거’, ‘사이버선거부정감시단’이란 문구가 함께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 욕을 가르치는 글들
이 씨가 게시판 검색창에 11일 치러지는 19대 총선에 출마한 한 후보의 이름을 입력했다. 그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글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자극적인 제목들이 줄줄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를 클릭해 그녀가 또다시 글을 읽어 내려갔다.
“‘××’라는 말 아세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 씨가 물었다. 입에 담기 민망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비하해 부르는 단어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 그 단어를 봤을 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함께 일하는 남자 단원들한테 뜻을 물었지만 속 시원히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더군요. 하지만 분명히 아는 눈치였어요.”
주변의 동성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다. 모두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가까운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에 비로소 그 뜻을 알았다.
“같은 여자로서 그런 여성 비하적인 표현들을 보면 불편하죠. 너무 많거든요. 그리고 남자 후보들한테는 ‘순수하게’ 욕만 하는데, 여성 후보들한테는 꼭 성적인 부분들을 넣어 욕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당사자가 모욕죄로 따로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별다른 제재 방법은 없다. 욕설만으로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성민 중앙선관위 사이버조사팀 주무관(39)은 “‘모욕’과 ‘비방’을 많이 헷갈려들 하는데, ‘비방’에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을 쓴 사람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아니라, 후보자의 내밀한 사생활 등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박 주무관은 “‘모욕’은 제3자가 봤을 때 글을 쓴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것이지만, ‘비방’은 글을 쓴 사람이 아니라 그 글에 등장하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진실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과 무관한 내용의 공개는 공직선거법 제251조 ‘후보자비방죄’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다.
2월 20일에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씨도 둘 사이의 차이를 잘 몰랐다. 잔뜩 욕설만 적어놓은 글들을 출력해 박 주무관에게 들고 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보는 눈’이 생겼다. 후보자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가 의심되는 게시물이 눈에 띄면, 그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도 따로 찾아 함께 들고 간다. 올해부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다양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후보자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를 제외한 모든 선거 운동이 가능하다.
“‘사실’이 맞다, 틀리다의 문제라면, ‘가치 판단’은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덕분에 우리나라 정치 스캔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죠(웃음).”
그녀가 출력해 온 게시물들은 박 주무관과 사이버조사팀장 등의 검토를 거쳐 선거법 위반 여부를 가리게 된다.
○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검색
이 씨 바로 옆에는 한은희 씨(45·여)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모니터 화면 위에는 2008년부터 선관위에서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사이버 자동 검색 시스템’이 떠 있었다.
이 시스템은 사전에 등록해 놓은 어휘가 포함된 게시물들을 자동으로 수집해 보여준다. 등록 어휘는 빨간색으로 표시되고, 그 말들이 들어있는 게시물의 제목과 게시 사이트 이름까지 함께 표시된다. ‘사이트 가기’ 버튼을 누르면 바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해 관련 내용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검색 시스템 덕분에 전국 246곳의 선거구에 출마한 920명의 후보 이름을 일일이 검색해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검색어로는 후보자들의 이름과 대표적인 별명 등이 등록돼 있다. 선관위에서는 새로운 이슈가 생기면 관련 어휘들을 추가한다. 약 3만 개의 검색 대상 사이트는 후보자들의 공식 홈페이지를 비롯해 포털, 언론사 등에 마련되어 있는 게시판들이다.
한 씨가 몇 번 클릭을 하자 새로운 창이 열리며 트위터에 올라온 글 하나가 보였다. 한 지역구의 여론조사 결과였다.
“다행히 이 글에는 출처가 포함돼 있네요. 출처를 밝히지 않고 여론조사 결과를 올려놓으면 선거법 위반이에요.”
고등학교 3학년과 대학생 자녀를 둔 한 씨는 하루에 보통 게시물 1000건 정도를 검토한다. 그녀는 “이렇게 정치 관련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지 처음 알았다”며 웃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확인된 게시물에 대한 삭제 요청은 해당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e메일을 보내는 형태로 진행된다. 트위터의 경우에는 게시자에게 직접 ‘멘션’을 보낸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만큼 삭제 요청도 바로바로 반영이 되는 편. 다만 스스로 글을 삭제한 뒤에도 게시자가 “어떤 부분이 위반인지 모르겠다”며 확인 전화를 해오기도 한다.
삭제 건수는 하루에 보통 40∼70건 정도다. 희한하게도 비가 오는 날 삭제 건수가 더 늘어난다고 한다. 아마도 사람들이 실내에 있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리라.
삭제 요청을 담당하는 최모 씨(26)는 “똑같은 글에 대해 20번 넘게 삭제 요청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선관위에서 요청해서 삭제했다’는 안내글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이들처럼 활동하고 있는 사이버선거부정감시단원들은 전국적으로 200명 정도. 중앙선관위에서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5∼10명으로 구성된 사이버선거부정감시단을 상시적으로 설치해 운영하며, 선거일 60일 전부터 선거일 후 10일까지는 10명 이내의 인원을 추가해 구성할 수 있다. 시·도 선관위는 선거일 12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30인 이내로 사이버선거부정감시단을 설치해 운영할 수 있다.
감시단원 채용 경쟁은 꽤 치열한 편이다. 박 주무관은 “단원 2명을 뽑기 위해 50명 정도 면접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수당은 하루에 3만 원. 삭제 조치까지 이어지는 활동 건수에 따라 한 달에 30만∼40만 원 사이에서 성과급이 차등 지급된다. 성과급까지 포함해야 겨우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수준. 단원을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특정 정당의 당원 여부다. 중립성 확보를 위해 특정 정당의 당원이었거나 특정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뽑지 않는다. 이를 위해 ‘비당원 확인서’를 직접 본인에게 받는다. 연령 제한은 없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등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있으면 유리하다.
○ 시간과의 싸움
“일단 지워라. 허위사실 여부는 차차 가려보자.”
때때로 후보자 측에서 전화를 걸어와 다급하게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기도 한다. 고발이나 수사의뢰보다 상대적으로 삭제 요청이 빠르고 간편하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선거법 위반의 의심만 있어도 바로 해당 게시물을 지울 수 있다는 오해도 많이 한다.
그러나 의심만으로는 삭제 조치를 내릴 수 없다. 게시자의 표현의 자유도 지켜야 할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삭제 조치는 허위사실이란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뒷받침되어야만 내려진다. 당사자에게 관련 자료와 정보 등 소명 자료를 요구하고, 사이버선거부정감시단에서도 나름대로 예전 기사나 법원 판례 등을 참조해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만약 해당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을 경우에는 삭제를 할 수가 없다.
“사실 그쪽 분들 못지않게 저희도 마음이 급하거든요. 빨리 이것이 허위사실인지 아닌지를 가려서 조치를 해야 하는데, 왜 지금 당장 지울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죠.”
박 주무관이 말했다.
그들의 마음이 더 급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온라인 세상의 특수성 때문. 한번 게시물이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특히 트위터 등 SNS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그만큼 파괴력도 커졌다.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한번 노출된 정보는 설사 그게 잘못된 것이었다고 해도 그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더구나 해명 자료는 원 자료만큼 널리 퍼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짧은 시간 안에 진실 여부를 가려, 틀린 내용이 퍼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박 주무관이 덧붙였다.
“광범위하게 퍼진 잘못된 정보는 왜곡된 결과를 가져오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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