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감수성의 보고이자 문학의 원동력.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으니 시와 사랑은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고래(古來)로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사랑을 노래했는가. 강은교, 고은, 문정희, 오탁번, 이해인, 손택수, 장석남, 조정권 등 우리 문단을 이끄는 시인 57명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난해한 주제인 ‘사랑’으로 한 편씩 신작시를 썼다.
세대와 성별, 그리고 인생의 경험이 다른 시인들이 각기 풀어낸 사랑 시들을 찬찬히 되새겨본다. 같은 사랑은 하나도 없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시어들은 꽃으로 피어난다. ‘사랑한다는 것은/엄청나게 으리으리한 것이다/회색 소굴 지하 셋방 고구마 푸대 속 그런 데 살아도/사랑한다는 것은/얼굴이 썩어들어가면서도 보랏빛 꽃과 푸른 덩굴을 피워올리는/고구마 속처럼 으리으리한 것이다’(김승희의 시 ‘사랑의 전당’에서)
‘우리가 가난한 연인이었을 때/푸른곰팡이 붉은곰팡이도 꽃이었다/아무 데서나 마음이 꺾였고/은화를 줍듯 공들여 걸었다’(이근화의 시 ‘우리가 가난한 연인이었을 때’에서)
지난해 3월 쉰 살의 나이에 동갑내기 신부와 결혼해 강화에서 인삼가게를 하고 있는 함민복 시인의 시 ‘당신은 누구십니까’의 맺음말은 이렇다. ‘밤이면 돌아와 人蔘처럼 가지런히/내 옆에 눕는/당신은 누구십니까/나는 당신의 누구여야 합니까’
사랑의 끝은 이별이다. 고영의 시 ‘태양의 방식’은 이렇게 운다. ‘당신은 어제의 방식으로 웃어달라 했다/나는 짐짓 고개를 돌린 채 어제의 웃음을 떠올려보았지만/당신과 나와의 요원한 거리만큼에서/기억은 노선을 헤매고 있었다//기억에도 정류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아무 때나 타고 내릴 수 있게…’
시작하는 사랑의 달콤함, 애틋함, 설렘부터 그 사랑이 식을 때의 상실감과 아픔까지. 책장 가득하다. 수많은 사랑 시들 가운데 유독 하나가 총알처럼 가슴에 박혔다.
‘사랑한다면/눈물의 출처를/묻지 마라//정말로 사랑한다면/눈물의 출처를/믿지 마라’(박후기의 시 ‘빗방울 화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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