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밤의 것이지 잠의 것은 아니다… 무자비한 시간은 흐르는 세월처럼 야금야금 기어가고 밤은 기약 없는 지옥 같구나.”
-‘제임스 톰슨, ‘무서운 밤의 도시’ 》 수험생 시절, 남들 다 먹는다는 보약을 짓기 위해 엄마 손 잡고 갔던 한의원. 잠은 잘 자냐고 한의사가 물었을 때 한참을 머뭇거려야 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잘 잔다고 할 수도, 잘 못 잔다고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제 그만 자야겠다’고 생각한 뒤 침대에 눕고 나면 그때부터 정신이 그렇게 또렷해질 수가 없었다. 몸은 피곤한데 머리만 바쁘게 돌아가는 상태로 몇 시간을 뒤척이다 한 숨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 반면 ‘딱 5분만 잔 뒤에 다시 일어나 공부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책상에 엎드린 뒤면, 형광등을 훤히 켠 채 아침까지 골아 떨어졌다. (그 상태로 깼을 때의 한심한 기분이란.) 두서없는 내 설명에 웃으면서 그분은 ‘그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 진단대로라면, 나는 아직도 잠을 잘 자지 못하는 편이다.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코 골며 자는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유형의 인간들이다.
사실 가벼운 불면증은 현대 도시인들이 즐겨 달고 다니는 경증의 우울증과 쌍벽을 이루는 감정적 사치품일 수 있다. 마음 놓고 잔다고 해도, 그동안에 삶을 위협할 전쟁, 폭동, 기근 같은 것들이 일어날 확률은 낮다. 하지만 생존과 직결된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편안히 잠들지 못한다.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순간. 불을 끄고 잠들기 위해 누우면 그제야 하루 동안 미처 소화되지 못한 갖은 생각의 보따리가 풀리기 때문이다. 잡생각들은 마치 자그마한 구슬처럼 하나둘씩 끝없이 쏟아진다. 그것들이 밤새 굴러다니는 소리가 잠을 집요하게 방해한다. 직장이나 가정에 근심거리가 있어서일 때도 있지만 별일 없이도 이런 상태는 반복된다. 무심코 들었던 핀잔, 오래전 누군가의 안부, 밀린 공과금에서부터 다음 날 잡아놓은 약속들, 망가진 구두 굽, 하다못해 냉장고에서 썩고 있는 과일까지 떠오른다.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시야는 어둡지만 머릿속엔 연상의 불이 오징어잡이 어선의 집어등만큼이나 환히 켜진다. 불면의 밤이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다’는 법구경의 구절은 밤새 뒤척여 본 사람들에겐 문자 그대로 진리다. 캐나다 출신 사진작가 제프 월의 ‘불면’(1994년)이란 작품은 불면자들의 고통과 그들의 궁여지책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작품 속의 남자는 잠옷 대신 불편한 평상복 차림으로 형광등 불빛이 훤히 켜진 부엌의 식탁 아래 들어가 엎드려 있다. 아무렇게나 빼놓은 식탁 의자와 열린 찬장, 산발이 된 머리와 일그러진 표정은 불면에 지친 남자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은 수험생 시절 불면에 대처했던 나의 방식(책상에 엎어져 자기)이 글로벌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임을 알려준다. 불면자들은 스스로가 수면 상태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순간 잠에서 멀어진다. ‘대체 몇 시간을 뒤척이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품기라도 하는 순간이면, 숙면은 더욱 요원해진다. 그래서 편법을 써야 한다. 책상 위에 엎어져서든, 식탁 아래에 엎드려서든 ‘설마 이런 데서 자기야 하겠어’라고 스스로를 방심시키는 순간, 그래서 모기떼처럼 공격해오는 하찮은 생각들이 의심 없이 중단된 순간, 그때 갑작스레 잠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제프 월의 작품 속 주인공은 그럼에도 잠들지 못한 상태로 눈을 치뜨고 있다. 그에게 밤은 얼마나 가혹한 저주일 것인가. 정도는 달라도 우리 대부분은 가장 편안하고 고요해야 할 순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근심과 불안에 쫓기며 잠을 설친다. 멀쩡한 잠자리를 두고 텔레비전을 켜둔 채 새벽녘 소파에서 잠드는 사람들, 서재와 거실, 부엌을 유령처럼 배회하다 환한 불빛 아래서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 잠들기 위해 오늘도 숫자를 1000 넘게까지 세고 있는 사람들. 제임스 톰슨의 절규처럼, 한치 앞을 종잡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감싸인 도시의 밤은 때때로 기약 없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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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이 Humor, Fantasy, Humanism을 모토로 사는 낭만주의자. 서사적인 동시에 서정적 부류. 불안정한 모험과 지루한 안정감 사이에서 줄다리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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