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쇼팽 콩쿠르에서 심사위원들의 격렬한 논쟁 끝에 2위를 차지하며 1위보다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피아니스트 잉골프 분더가 한국을 처음 찾았다. 10,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연주회 ‘쇼팽을 만나다’는 독주자의 다양한 예술적 성격을 조명할 수 있는 알찬 프로그램으로 꾸려졌다.
11일 연주회에서 분더가 보여준 놀라운 피아니즘은 두고두고 화제가 될 만하다. 폴란드 로열 현악 4중주단이 감각적인 드뷔시 현악 4중주 g단조를 연주한 뒤, 리스트의 ‘밤의 선율’을 연주한 분더는 첫 울림부터 귀족적인 음색과 또렷한 터치로 청중을 감탄케 했다. 그 다음 연주한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그랜드 폴로네즈’는 분더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템포의 변화를 억제하고 수직적 구조와 악절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는 그의 연주에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나 그의 스승인 아담 하라시에비치, 이그나즈 프리에드만과 같은 폴란드 출신의 비르투오소(명연주가)들이 보여준 고전적인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안정된 상체와 살짝 굽어있는 손 모양, 문지르듯 터치하는 손가락 각도와 적절히 안으로 접히는 새끼손가락, 감각적이며 순발력 있는 페달 사용 등이 만들어낸 개성 넘치는 명인기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펼쳐낸 명장면이었다.
2부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과연 이 작품을 현악 4중주 버전으로 연주회장에서 감상할 기회가 또 있을까. 실내악 반주는 쇼팽이 활동하던 당시 프랑스 파리의 살롱에서 가졌을 법한 정겨운 분위기와 디테일한 표현력을 살려주었기에 오케스트라 버전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더군다나 오케스트라 버전에 비해 피아노 사운드가 훨씬 명징하게 들린 점, 효율적인 반사음 분산과 정재파(구석에서 발생하는 산만하고 정제되지 않은 음) 흡음이 돋보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의 특성이 더해져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앙코르곡인 리스트의 ‘차르다시 마카브레’에서 분더가 보여준, 오르간을 떠올리게 하는 왼손의 울림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예각적인 터치, 자유자재로 배합되는 무게감과 강약의 조화는 그가 타고난 비르투오소임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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