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만 나는 너에게 꽃을 준다, 삶이여/나의 상처는 돌이지만 너의 상처는 꽃이기를, 사랑이여”(‘이런 시를 쓴 걸 보니 누구를 그 무렵 사랑했었나 보다’ 중)
류시화 시인(54·사진)이 세 번째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문학의 숲)을 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1991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1997년) 이후 15년 만이다. 그동안 썼던 350편이 넘는 시 가운데 56편을 모았다. ‘옹이’를 제외하곤 모두 미발표 작품이다.
앞선 두 시집은 각각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 뒤 시인은 10년 넘도록 외국의 시와 고백록, 기도문을 번역해 소개하거나 인도, 네팔 등지를 여행하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 같은 여행기를 썼고 새 시집 출간과는 거리를 둬 왔다.
“15년 동안 단 한순간도 (시를) 쓰지 않은 적이 없어요. 하지만 발표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죠.” 시인은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두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중 시인’ 또는 ‘상업 작가’로 분류되는 게 싫었다고 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건강이 안 좋아졌어요. 문득 ‘내가 이대로 죽으면 시인이 아니라 번역가로 죽겠구나’ 싶었어요. ‘시인으로 살다가 시인으로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쓴 시들을 모아 시집을 내기로 했죠. 시를 정리, 보완해 완성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류 시인은 시를 종이에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의 다섯 달 정도를 길 위의 여행자로 살아가며 “입 속에서 수없이 중얼거리며 외워 쓴다”는 것이다. 입 속에서 완성된 시어에는 그만의 독특한 리듬과 언어적 감성이 녹아 있다. 오랫동안 써온 시들이라 이번 시집은 소재와 주제가 다양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그는 “시인인데 연예인처럼 언론에 얼굴 내미는 게 싫고, 시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싶지도 않아 ‘저자와의 대화’ 같은 강연회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시로써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를 많이 읽지 않는다는 이 시대에 더 많은 독자가 자신의 시집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시로만 말할 수 있는 삶이 있어요. 전 이 시들이 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이, 생명이, 사물이 시인인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지요. 시를 읽으면서 독자들 스스로가 잠시 멈춰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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