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타히티섬으로 떠난 고갱, 예술혼의 고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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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1일 03시 00분


◇예술가의 여행/요아힘 레스 지음·장혜경 옮김/304쪽·1만6800원·웅진지식하우스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알제리를 여행하고 그린 ‘알제리의 여인들’(1834년).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알제리를 여행하고 그린 ‘알제리의 여인들’(1834년).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창작자의 적(敵)은 안주(安住)다. 새로운 곳에 아기처럼 눈과 귀와 가슴을 내맡길 때 영감이 피어나고 기교는 숙성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예술가는 역마살이 낀 것처럼 본능적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프랑스 파리는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꿈의 도시이지만 정작 이곳에서 태어난 폴 고갱은 “유럽의 돈 전쟁에서 멀리 떨어져 태평양 섬의 숲으로 도망가 황홀경과 휴식과 예술로 살아갈 날”을 꿈꾸었다.

독일의 미술사가인 저자는 15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화가, 건축가, 조각가 등 유럽 예술가 13명의 여정을 더듬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유럽 이곳저곳을 넘어 중남미의 파나마 브라질, 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 타히티 폴리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의 보폭은 넓디넓었다.

독일의 여성 화가이자 과학자였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52세이던 1699년 암스테르담 항구에서 스무 살을 갓 넘긴 딸과 함께 대서양 횡단 무역선에 올랐다. 목적지는 남미 대륙 북쪽의 네덜란드 식민지 수리남. 당시 유럽인들은 오직 설탕을 얻기 위해 그 먼 땅으로 향했지만 이 여인의 목적은 그곳의 자연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곤충의 성장 단계를 관찰하고 기록하기 위해 이국의 고온다습한 기후를 무릅쓰고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모험에 나섰다. 메리안은 수리남에서 2년 동안 곤충과 꽃 그림을 그렸고 이후 ‘수리남 곤충의 변태’라는 책도 출간했다.

공무 목적의 여정이 예술 여행이 된 경우도 있다.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지스는 1772년 탐험가 제임스 쿡 일행의 태평양 탐사에 동행해 태평양의 섬들과 항해 과정을 수묵화와 스케치로 남겼다. 그림으로 탐험을 기록하기 위해 해군본부로부터 초청받은 해외출장이었지만 풍경 화가인 그에게 남극과 폴리네시아, 타히티의 이국적 풍경은 분명 영국에선 경험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모로코와 알제리를 여행한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놀라움을 파리의 친구들에게 편지로 전했다. 끝없는 새로움을 접하면서 창작 욕구가 끓어올라 ‘팔이 스무 개였으면 좋겠고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고 쓸 정도였다. 들라크루아는 알제리의 한 집에서 여자들의 방을 들여다보고 명작 ‘알제리의 여인들’을 남겼다.

독일 베를린에서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실은 화가 에밀 놀데는 조선과 일본을 거쳐 선박으로 독일령 뉴기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강제 노역에 끌려가다 갇힌 원주민들을 스케치하면서 백인 유럽인들의 잔혹한 식민화를 반성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는 듣는 사람까지 설레게 한다. 하물며 그곳이 위대한 명작을 잉태한 곳이라면 더욱 흥미롭다. 예술가들의 여행이 이들의 정신세계와 화풍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충분한 분석이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도 든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책의 향기#문학예술#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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