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처럼 자기계발 서적이 인기를 끄는 나라도 없다. 서점에는 ‘연봉을 10배로 늘리는 법’ ‘비즈니스 머리를 만드는 사고’류의 서적이 넘쳐난다. 자기계발서 코너는 독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시선을 가장 오래 잡아끄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인의 자기계발 열정은 얼핏 착실하고 근면한 국민성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본인의 이 같은 자기계발 열풍에 딴죽을 거는 이가 있다. 사회평론가인 미야자키 마나부(宮崎學)는 최근 내놓은 ‘자기계발병(病) 사회’(쇼덴샤·祥傳社)에서 일본 내 자기계발 열풍의 연원을 파헤쳤다. “너 나 할 것 없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과의 차별화를 위해 스킬 연마에 매달리는 일본은 심각한 병에 걸린 사회”라는 비판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 자기계발의 계보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야자키는 80년대의 자기계발과 90년대 이후의 자기계발을 구분한다. ‘80년대의 자기는 자기 주변만이 아니라 사회로 확장되는 힘이 있었지만 90년대의 자기는 자신에 함몰된 나머지 사회로부터 분리된 협소한 자기’라는 분석이다. 80년대는 일본이 세계 제1의 경제국을 자랑하던 시절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회 곳곳에 넘쳤던 그 시절엔 자기계발의 주체들이 밖으로 자기를 넓혀가려는 에너지가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자기계발은 사회 불안과 무력감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기 안으로 움츠러드는 소극적인 계발로 변질됐다는 것.
저자는 이 같은 자기계발의 변질이 2001∼2006년 집권했던 고이즈미 내각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영국의 사상가인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self-help)’을 일본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틀로 삼으며 ‘남(국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인간상’과 ‘휴식보다 땀을 강조하는 노동관’ ‘이타적 협조보다 이기적 성공을 미덕으로 치는 성공관’이 스마일스의 자조론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미야자키는 고이즈미류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스마일스의 자조론을 선택적으로 발췌 번역해 오독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부분번역본을 완역본이나 영어 원본과 면밀히 대조하면서 “스마일스의 자조는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 자조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병립하는 개념”임을 확인했다. 신자유주의의 자조론 예찬론자들은 상호부조를 ‘서로 의지하려는 구조’ ‘경쟁을 배척하는 관계’로 깎아내리고 자조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각자의 이기적인 이익 추구야말로 사회적 활력을 가져오는 자조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자조론 왜곡을 ‘의도된 오역’이라고 비난했다. 잃어버린 20년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정부가 주입한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서양과 같은 온전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기반이 없는 일본에 ‘자유주의 없는 신자유주의, 개인주의가 결여된 이기적 자조정신’만 키웠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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