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일본 규슈 열차여행]<상>JR규슈의 열한 가지 이색열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7일 03시 00분


구마모토 현의 구마 강을 따르는 JR규슈의 단선철도 히사쓰 센 주변으로 펼쳐지는 규슈의 봄날 아침 풍경이 풋풋하다. 신야쓰시로를 출발해 히토요시로 향하는 특급열차에서 촬영했다.
구마모토 현의 구마 강을 따르는 JR규슈의 단선철도 히사쓰 센 주변으로 펼쳐지는 규슈의 봄날 아침 풍경이 풋풋하다. 신야쓰시로를 출발해 히토요시로 향하는 특급열차에서 촬영했다.
2009년 2월 13일 오전 10시. 한 달 후 도쿄를 출발하는 ‘후지·하야부사’의 열차표 예매가 전국 JR(일본철도) 매표소에서 개시됐다. 좌석은 640개. 그런데 예매는 딱 10초 만에 끝났다. 후지·하야부사는 오사카를 경유해 도쿄와 규슈를 잇는 ‘일본의 대동맥’ 철도를 운행하는 특급 침대차. 색깔이 파랗다 해서 ‘일본판 블루트레인(Blue Train·남아공 프리토리아∼케이프타운 25시간이 걸리는 구간을 운행하는 럭셔리 침대열차)’이라고 불려왔는데 유독 이날분 예매에 불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게 후지·하야부사의 마지막 편이어서였다.

이듬해 연말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특별한’ 신칸센 승차권 예매였는데 이번에도 마감까지 5분을 넘기지 않았다. 2011년 3월에 아오모리∼도쿄∼신오사카(이상 혼슈)∼하카타∼가고시마(이상 규슈)를 4개(도호쿠, 도카이도, 산요, 규슈)의 신칸센 열차로 연달아 주파하는 30석 한정의 일본 종주 신칸센 승차권이었다. 이게 특별했던 건 철도로 연결(해저터널)된 혼슈와 규슈를 신칸센으로 종주해 양섬의 남단과 북단을 섭렵하는 최초의 여행인 데다 딱 30명이란 한정 상품이어서다. 이 이벤트는 규슈신칸센 완전 개통(2011년 3월)을 기념해 추진됐는데 그 배경에는 첫 신칸센 개통(1964년 도카이도신칸센·도쿄∼신오사카) 이후 47년 만에 이룬 역사적인 ‘혼슈∼규슈 고속철 연결’에 대한 기쁨과 자랑이 담겨 있었다.

이렇듯 일본인의 철도여행에 대한 관심은 우리와 다르다. 여행문화에 뿌리내린 철도의 지대한 영향력 덕분인데 자동차와 도로가 사람과 물자의 수송을 분담하기 훨씬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국민의 발이 될 만큼 전국 도시와 마을을 구석구석 연결해 주어서다. 그런 만큼 일본에서는 철도가 아직도 여행 수단으로 사랑받는다. 그래서 철도회사마다 특별한 열차를 개발하고 특징 있는 코스를 설계한다. 그리고 열차여행 상품까지 만들어 판매한다. 그런 면에서 가장 다양하고 즐길거리가 많은 철도는 JR규슈이다. JR규슈를 이용한 철도여행을 다양한 특급열차를 통해 살펴보자.

더 우아하고 고급스러워진 고속철도

규슈신칸센 고속철도를 운행하는 JR규슈의 쓰바메 열차. 2004년부터 운행된 800계 (係·series) 열차다.
규슈신칸센 고속철도를 운행하는 JR규슈의 쓰바메 열차. 2004년부터 운행된 800계 (係·series) 열차다.
JR규슈의 열차 가운데 특급 이상은 13개. 그중 2개가 고속철이니 특급열차는 모두 11개다. 규슈신칸센은 1시간 19분 만에 하카타∼가고시마주오 역을 주파한다. 완전 개통 전(2시간 12분)에 비해 53분 단축됐다. 산요신칸센으로 신오사카를 출발해 가고시마주오 역까지도 5시간 2분에서 3시간 45분으로 단축됐다. 혼슈에서 규슈로 접근성까지 개선된 셈이다. 한국인 여행자에게도 크게 도움이 된다. 주 3회 항공기 운항(가고시마∼인천) 일정에 맞추느라 제약이 많았던 남규슈 여행이 하루에도 여러 편 운항되는 후쿠오카공항에 대한 접근성 향상으로 좀 더 편리해졌다는 점이다.

규슈신칸센을 운행하는 고속열차는 사쿠라 쓰바메 미즈호 등 세 종류. 사쿠라와 쓰바메는 역(9개)마다 서는 ‘속달’이고 미즈호는 5개만 서는 ‘최속달’. 성능과 디자인에 따라 800계(係·series)와 700계로 나뉘는데 규슈신칸센 완전 개통에 앞서 신(新)800계(쓰바메)가 추가됐다. 신800계의 쓰바메를 타보니 플라스틱제 카펫 바닥에 원목을 가미한 N700계보다 실내가 훨씬 고급스럽다. 벚나무로 만든 블라인드에 목제 걸이, 녹나무 원목의 통로 벽을 금박옻칠 액자가 장식한다.

저마다 독특한 테마를 담은 특급열차


JR규슈는 ‘빙하특급’(생모리츠∼체르마트·체르마트 빙하마을 운행) ‘베르니나특급’(알프스 산맥의 베르니나 고개 통과)처럼 ‘테마열차’로 관광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스위스 철도의 전략을 그대로 따른다. ‘하우스텐보스’ ‘유후인노모리’ ‘아소보이’ ‘SL히토요시’―이상 모두 이름 앞에 ‘특급’이 붙는다―가 그것인데 독특한 열차 이름 자체가 특정 관광지나 어트랙션을 표방하며 여행의 테마를 담고 있다.

하우스텐보스는 나가사키 현의 바닷가에 있는 테마파크로 풍차와 튤립으로 상징되는 네덜란드의 유럽풍 건축과 음식, 문화가 테마다. 나가사키는 16세기에 일본을 최초로 방문한 유럽 선박이 정박한 항구이고 당시 찾아온 이들이 네덜란드 상인이다. 특급열차 하우스텐보스(하카타∼하우스텐보스·100분)는 그 역사를 담아 유럽풍 외관에 빨강 초록 파랑 노랑 등 원색이 가미됐다. 역에서 하우스텐보스 매표소까지는 걸어서 7분 거리다.

유후인(오이타 현)은 규슈는 물론이고 일본 전국적으로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온천마을로 손꼽히는 곳. 유후인노모리 특급열차(하카타∼유후인)는 그런 유후인을 겨냥한 고급스러운 테마열차다. ‘모리(森·숲)’라는 명칭은 이 철도가 통과하는 고원의 숲을 강조한 작명. 그래서 객차 실내의 바닥과 짐받이, 탁자가 원목이고 이따금 새의 지저귐도 틀어준다. 고원 풍치 감상을 위해 차창도 천장까지 확장된 파노라마형을 설치했다. 1989년부터 운행됐다.

아소보이(구마모토∼미야지)는 유황가스와 연기를 쉼 없이 내뿜고 있는 활화산 아소를 찾는 관광객을 위한 특급열차다. ‘보이(Boy)’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열차 디자인의 테마는 ‘동심을 자아내는 장난감 상자’. 나무 공으로 채워진 놀이 풀(pool)과 그림책도서실, 부모와 어린이 한 명이 나란히 앉는 3석의 ‘시로이구로찬’ 시트, 창을 마주한 파노라마 시트, 라운지 칸을 통해 그런 생각을 실내에 구현했다.

SL히토요시(구마모토∼히토요시)는 40년 전 운행을 중단한 증기기관차(SL·Steam Locomotion). 신야쓰시로(규슈신칸센 중간 역)를 지난 후로는 계곡을 따라 급류를 이루며 거칠게 흐르는 구마 강변을 따른다. 종착점인 히토요시는 산중의 역사.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타보고 싶어 하는 히사쓰센(1909년 개통된 구마모토∼가고시마 산악구간 옛 철도)의 풍치 구간 시작점인데 히사쓰센에는 ‘일본 3대 차창 풍경’이 간직돼 있다.

신화와 역사, 지방 문화를 여행 상품화


JR규슈의 특급열차 ‘이사부로 신페이’ 실내(왼쪽). 1900년대 초반의 인물이 테마여서 인테리어도 당시를 회상케 할 만큼 고전적이다. 오른쪽 사진은 이사부로신페이 특급열차의 외관. 산간 오지를 달리는 관광열차로 인기다. JR규슈 제공
JR규슈의 특급열차 ‘이사부로 신페이’ 실내(왼쪽). 1900년대 초반의 인물이 테마여서 인테리어도 당시를 회상케 할 만큼 고전적이다. 오른쪽 사진은 이사부로신페이 특급열차의 외관. 산간 오지를 달리는 관광열차로 인기다. JR규슈 제공

전설과 동화, 역사적 인물과 지방색도 JR규슈에서는 특급열차의 테마이자 이름이다. 남규슈의 미야자키 현은 한때 ‘일본의 하와이’로 이름을 날리던 해안관광지. 거기서도 백미는 니치난(日南) 해안인데 일본 건국신화의 무대이면서 ‘귀신의 빨래판’이라는 독특한 현무암 침식해변 등으로 찾는 이가 많다. 특급열차 ‘우미사치야마사치(海辛山辛)’는 이 니치난의 해안철도를 달리며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성하(城下)마을 오비를 지난다. 오비는 100여 년 전 성주가 조림해 무성해진 삼나무로 유명한 곳. 우미사치야마사치는 그 역사를 담아 외관과 실내를 ‘오비스기’라는 이곳 삼나무로 치장했다. 이름도 니치난 해안의 우도 신궁과 아오시마 신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용왕설화 속 천신의 두 아들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가고시마주오∼이부스키를 오가는 특급열차 ‘이부타마’(2011년 운행 개시·52분 소요)도 용왕설화를 테마로 작명하고 또 디자인했다. 이부타마는 ‘이부스키 다마테바코’(이부스키의 보물 상자)의 줄임말. 한 어부가 착한 일로 용궁에 초대돼 용왕의 딸과 지내다가 사흘 만에 돌아왔는데 그때 선물로 받은 보물 상자가 이부타마다. 어부는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당부를 잊고 상자를 열었고 피어오르는 연기를 마시는 순간 용궁에서 보내는 사이 순식간에 흘러간 300년 세월을 고스란히 나이로 먹어 늙어 버렸다는 이야기인데 열차는 그걸 담아 출발 플랫폼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하얀 연기를 내뿜는다.


히사쓰센의 특급열차 이사부로신페이(히토요시∼요시마쓰)는 동명인물(야마가타 이사부로·1857∼1929)이 테마다. 그는 1909년 히사쓰센 개통 당시 일본 철도원의 총무―훗날 외상과 도쿄시장 역임―로 당시 첨단시설인 스위치백과 루프(급경사를 오르기 위해 고안된 지그재그 및 또아리 형식의 철길)를 동원해 히사쓰센을 완공한 주역이다. ‘일본 철도 3대 차창 비경’도 이 열차 운행 중에 펼쳐진다. 플랫폼의 종을 울리면 행복이 찾아온다 해서 유명해진 미사키(眞幸)역(미야자키 현)도 선다.

이사부로신페이의 히사쓰센 종점인 요시마쓰는 또 다른 특급 ‘하야토노카제’의 가고시마혼센(종점 가고시마주오 역) 출발 및 도착 역이기도 하다. ‘하야토’란 선이 굵은 ‘사쓰마(가고시마 서부의 봉건시대 옛 지명) 남자’의 통칭. 검은 차체에 금빛 엠블럼의 열차 외관도 그걸 표현한다.

특급열차 시로이카모메(하카타∼나가사키 역)와 소닉(하카타∼고쿠라∼벳푸∼오이타)은 도시 간을 고속 질주(운행 시속 최고 130km)하는 유럽식 ‘인터시티’형 쾌속열차다. 신칸센을 닮은 유선형 차체는 알루미늄 재질. 커브에서는 차체를 기울여 원심력으로 인한 실속을 줄여 주행 안정성을 높인 첨단열차다. 실내 바닥은 원목이고 가죽재질의 시트는 모두 누일 수 있다. 시로이카모메 열차는 사가 현 평야와 아리아케 해안, 후겐다케 산악풍광을 선사한다. 북규슈 횡단코스를 운행하는 소닉은 가모메의 속도 향상 모델로 큰 차창을 갖고 있다.


규슈=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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