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민화의 세계]백자도, 부모의 자식출세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5일 03시 00분


‘정승놀이’(백자도병풍 중·19세기 말∼20세기 초).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종이에 채색, 34.0×60.0cm. 정승의 행차를 아이들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사내아이를 많이 낳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자식이 높은 벼슬을 하기를 바라는 출세의 염원도 담겨 있다(위), ‘백자도’(범어사 독성각 벽화·20세기 초). 득남의 기운이 넘친다고 이름난 부산 범어사의 독성각 내벽에는 어린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여러 놀이를 즐기는 모습의 백자도가 그려져 있다(아래).
‘정승놀이’(백자도병풍 중·19세기 말∼20세기 초).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종이에 채색, 34.0×60.0cm. 정승의 행차를 아이들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사내아이를 많이 낳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자식이 높은 벼슬을 하기를 바라는 출세의 염원도 담겨 있다(위), ‘백자도’(범어사 독성각 벽화·20세기 초). 득남의 기운이 넘친다고 이름난 부산 범어사의 독성각 내벽에는 어린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여러 놀이를 즐기는 모습의 백자도가 그려져 있다(아래).
민화 중에 어린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바로 백자도(百子圖)다. 백 명의 사내아이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백자도의 유래는 멀리 중국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무려 백 명이나 되는 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참,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은 역사 기록상 동양 최초로 태교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임신했을 때 눈으로는 나쁜 것을 보지 않고,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입으로는 거만한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또 백 명의 아들을 둔 이가 있으니, 중국 당나라의 무장 곽자의(郭子儀)다. 그는 ‘분양왕(汾陽王)’을 지낸 바 있어 세상에는 ‘곽분양(郭汾陽)’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백 명의 아들과 천 명을 헤아리는 손자까지 두어(백자천손·百子千孫) 다복한 가정을 꾸린 모범적인 예로 많은 이의 칭송을 받았다.

조선시대 민화는 이 두 가정의 아이들을 백자도의 모델로 삼았다. 혼례 때는 백자도 병풍을 설치해 많은 자손을 두기를 기원했다. 연산군은 원자(元子·아직 왕세자에 책봉되지 않은 임금의 맏아들) 시절 백자도를 통해 궁궐 바깥세상의 어린이 놀이를 배우기도 했으니, 백자도는 다산(多産)을 바라는 것 이외에 교육용으로도 쓰인 것이다.

○ 득남에 대한 뜨거운 열망


조선시대에 사내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마음은 단순한 소망이라기보다는 ‘신앙’에 더 가까웠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많은 생산 인력이 필요하고, 가부장적인 권위가 지배한 전통 사회에서 득남에 대한 열망은 당연한 일이었다.

1849년 홍석모(洪錫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해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들어 있다. 매년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오늘날의 충북 진천군에 위치한 ‘소두머니(牛潭)’에 여자들이 무당을 데리고 몰려든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용왕당(龍王堂) 및 삼신당(三神堂)에 가서 득남을 기원하는 기도를 했는데, 그 행렬이 끊어지지 않고 인파가 시장바닥처럼 1년 내내 들끓었다고 한다. 아들을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런 상황까지 벌어졌을까.

득남에 대산 절실함은 용하다는 산신(山神), 용왕신, 삼신 등에게 비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남녀의 성기 모양을 닮은 돌이나 나무에 몸을 비벼대거나 몸속에 부적이나 은장도를 지니기도 했으며, 심지어 수탉의 생식기까지 날것으로 먹었다. 남아선호의 양태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절절했다.

부산 범어사에도 득남 기도처로 유명한 팔상나한독성각이 있다. 이름이 이렇게 복잡하고 긴 까닭은 팔상전, 나한전, 독성각이 한 채로 연이어 붙어 있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대중이 복을 기원하는 독성각에는 늘 아이 낳기를 원하는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독성각 곳곳에는 득남과 관련한 벽화와 조각들이 장식돼 있다. 특히 전각 내벽에는 민화 백자도가 그려져 있고, 바깥 기둥에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새겨져 있다. 백자도 외에도 사군자도, 산수도, 나한도 등이 내벽 위에 그려져 있지만, 중심에 있는 그림은 역시 백자도다. 백자도을 보면 쌍상투를 튼 동자들이 제기차기, 재주넘기, 술래잡기, 구슬치기, 말타기 등 한창 즐거운 놀이 중이다. 이런 놀이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밀려 어느새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난, 추억의 장면들이 돼버렸다.

○ 다산과 출세의 상징, 백자도


그런데 백자도에 동심의 세계만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자식의 출세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이 보태지기도 한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백자도 병풍에는 자식을 출세시키려는 부모의 바람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장군놀이, 과거급제놀이, 판서놀이, 문무놀이, 정승놀이 등 어린이의 놀이 가운데서도 ‘벼슬놀이’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병풍의 그림은 양반의 한평생을 그린 평생도(平生圖)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림 가운데 ‘정승놀이’ 부분은 실제 정승의 행차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아이들은 평교자를 탄 정승과 파초선으로 햇빛을 가려주는 시종, 벽제(除·지위가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하인들이 잡인의 통행을 금하던 일)를 해 ‘길’을 내는 사람의 역할까지를 모두 정확하게 해내고 있다.

정1품 정승은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급으로, 양반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벼슬이다. 그렇다보니 이 그림엔 다른 백자도에서처럼 해맑은 동심의 세계만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출세의 욕구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정승 행차를 하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에 출세를 바라는 어른들의 바람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오늘날 다산과 득남의 중요성은 점점 옅어져 간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열의는 어쩌면 요즘이 예전보다 더 높아진 것 같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가고, 학원이 끝나면 과외 수업을 받는 것이 지금 어린이들의 현실이다. 이런 세태가 벼슬놀이를 하며 정승을 꿈꾸는 아이들을 백자도에 담았던 조선시대 어른들의 욕심과 무엇이 다를까.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에겐 동심이 제일인 것을…. 그 기본적인 것을 오늘날의 어른들도 모르는 듯하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문화재학)·한국민화학회 회장 chongpm@gju.co.kr
#백자도#자식출세#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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