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78·사진)이 오도릭의 ‘동방기행’을 역주해 내놓았다. 오도릭의 ‘동방기행’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힌다. 이로써 정 소장은 세계 4대 여행기 중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제외한 3권의 번역을 마쳤다.
14세기 이탈리아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오도릭은 기독교 전파를 위해 12년간 동방을 여행하고 임종 직전 병상에서 ‘동방기행’을 구술했다. 그의 여정은 이란 등 서아시아,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티베트 등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이른다. 아쉽게도 고려에 대한 언급은 없다. 원본이 구술된 것이라 노정상의 혼동과 오류가 상당수 발견되는데 정 소장은 치밀한 고증을 거쳐 오류를 수정하고 해설과 주석을 곁들였다. 라틴어 원본은 소실돼 정 소장은 영역본을 번역했다.
정 소장은 아랍계 필리핀인 ‘무함마드 깐수’로 위장해 단국대 사학과 교수를 지내다 1996년 남파간첩임이 밝혀져 5년간 복역한 뒤 전향해 풀려났다. 요즘엔 문명교류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시대의 비극이 낳은 간첩으로 알려졌지만 학계에서는 국내 문명교류학을 개척한 권위자로 평가된다.
2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출간 기념회에서 정 소장은 “세계여행기는 곧 문명교류의 실록”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이수광의 ‘지봉유설’,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유길준의 ‘서유견문’, 최부의 ‘표해록’ 등 세계성을 띤 여행기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 이 여행기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점이지요.”
그는 “혜초는 마르코 폴로보다 수백 년 앞서 여행기를 남겼고 여행기 자체의 문학적 문명사적 가치도 뛰어나다”며 “왕오천축국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순이 되어가는 정 소장의 최종 목표는 신생학문인 문명교류학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는 것. “순수학문이란 없으며 인문학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 등 모든 학문은 문명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발전해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세계의 문명교류 루트 답사를 진행 중인 그는 지난 6년간 오아시스 육로와 북방 초원로를 통한 실크로드 답사를 마쳤고 이제 남방 해로 답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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