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5월, 나를 적시는 ‘당신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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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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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일요일. 가족적인 봄 햇살. 5월의 신부들과 ‘너의 노래’.
트랙 #7 Elton John 'Your Song'

엘턴 존.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엘턴 존.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5월은 가정의 달일 뿐 아니라 결혼의 달이기도 하다. 그렇다. 벚꽃 잎처럼 쏟아져 내리는 청첩장.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평소엔 신용카드에 밀려 등판 기회가 없던 5만 원권 1장이나 1만 원권 5장 같은 것들을 준비하고, 입기 싫은 정장을 꺼내 입은 뒤, 신랑 또는 신부에게 그들 못잖게 밝은 미소를 지어 인사한 다음, 동그란 테이블에 앉은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늦은 휴일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다.

청첩장을 ‘신청곡 틀어달라고 애청자가 보낸 엽서’쯤으로 생각해 보기로 할까. 하긴 가끔 실제로 청첩장과 함께 신청곡이 들어올 때가 있다. 8년 전이었나.

과 두 학번 선배인 J 형은 그때 나와 내 친구 Y에게 맥주잔을 건네며 말했다. “내 결혼식에서 이 노랠 불러줘.” 엘턴 존의 ‘유어 송’이었다. ‘청탁’ 전까지 난 이 노랠 잘 몰랐다. 통기타대백과사전의 바랜 페이지에서 스친 옛날 노래 정도.

이어폰을 꽂고 가사를 펼쳐든 내 눈이 금세 습해졌다. ‘내가 부자라면 네게 우리 둘이 살 큰 집을 사주겠지만 난 보잘것없는 사람이어서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곤 고작 이 노래뿐’이라는 가사는 스물세 살 엘턴 존의 담백하지만 간절한 목소리에 실려 흘러나왔다. ‘누구에게든 이게 당신의 노래라고 말해도 좋아.’

‘간단한 노래’라는 엘턴 존의 가사와 달리 반주를 통기타 한 대로 다시 편곡한다는 건 간단치 않았다. 콘트라베이스와 나일론 기타부터 하프를 포함한 관현악 등이 조금씩 가세되며 결국 꽉 들어차는 편곡은 그 밀도로 엘턴 존의 소박한 보컬과 가사를 압도하지 않았다.

역량 부족 탓에 정말 ‘간단’해져 버린 내 반주를 덮어준 Y의 ‘눈 감고 들으면 천국’형 보컬 덕에 축가는 꽤 성공적이었다.

‘유어 송’을 다시 들은 건 그로부터 몇 달 뒤 미국 여행에서였다. 라스베이거스의 불야성 한가운데, 벨라지오 호텔 앞 음악분수에서 난데없이 흘러나온 그 노래에 내 눈은 다시 흐려졌다.

프랭크 시내트라는 비틀스의 ‘섬싱’을 가리켜 ‘사랑한다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 최고의 사랑노래’라고 했다. 내가 시내트라라면 ‘섬싱’은 ‘유어 송’이다. ‘사랑한다’ 대신 이런 가사가 들어 있긴 하지만.

‘(여기) 이런 가사를 담아도 괜찮을까. 네가 이 세상에 있는 한 인생이란 얼마나 멋진 것인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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