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는 詩]새파랬던 세상은 핏빛노을로 변해… 이젠 서부역에서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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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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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만나기 위해 동쪽으로 간 적이 있었다. 이글거리는 아침 해처럼 뜨겁던 사랑. 이젠 날이 진다, 이 핏빛 노을 가운데 서 있다. 여기는 서쪽. 나는 여전히 그를 기다린다. ‘이달에 만나는 시’ 5월 추천작으로 최문자 시인(69)의 ‘서부역’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집 ‘사과 사이사이 새’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김민정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

최문자 시인. 민음사 제공
최문자 시인. 민음사 제공
“청년 시절에는 굉장히 동쪽에 있었죠. 에너지를 가진다는 것, 기다리는 자체가 좋았죠. 이제는 새파랬던 세상 전부가 서부가 됐어요. 자작나무 길을 걸어도 쓸쓸할 뿐이죠.”

198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올해 등단 30년을 맞았다. 6년 만에 낸 여섯 번째 시집. 그가 노래해온 사랑과 이별은 보다 애잔해졌고, 남긴 상처는 더 퍼렇게 아물었다. 사랑은 본디 아픈 것인가.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기 싫은데, 붙잡고 싶지만 떨어지는 불행함을 갖죠. 사랑은 붙잡는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랑은 아픈 거죠.”

이건청 시인의 추천사는 이렇다. “일반적인 고백의 언술은 부드럽고 화해롭다. 그러나 최문자 시인의 고백 시편들은 차갑고 가차 없다. 자신을 투시하기 위한 고통 속으로 하강해 들어간다. 그가 찾아낸 비유의 시편들이 커다란 내포와 깊이를 지니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장석주 시인은 “흐르는 것은 너무 오래 흐르고, 기다리는 것은 엉뚱한 방향에 가 있다. 세상과 자아는 어긋나 있고, 그 어긋남 때문에 되풀이되는 일상은 모호하고 의심스럽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김민정 시인은 “방치와 다른 곁눈질, 안 보는 척하며 다 보는 건강한 오지랖, 최문자의 사랑은 씩씩해서 참 좋다”고 평가했다.

김요일 시인은 강연호 시인의 시집 ‘기억의 못갖춘마디’(문예중앙)를 추천했다. “생의 흔적과 그리움 사이를 배회하며, ‘불 꺼진 창’ 밖에서 노래하는 강연호 시인의 시는 적절히 쓸쓸하고 더 없이 아름답다. ‘청춘은 가고 연애는 끝나도/별은 떠서 세상이 우주라는 것을/결국은 한통속이라는 것을 알려준다’라니!”

이원 시인은 박성준 시인의 시집 ‘몰아 쓴 일기’(문학과지성사)를 추천하며 “몰아(沒我), 즉 나를 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만이 ‘아껴 쓴 일기’가 된다고 선언한 신인이 등장했다. 뜨겁고 아픈 저항을 끝내 ‘시의 몸’으로 삼겠다는 ‘개봉된 청춘’을 주목해 보자”라고 말했다.

손택수 시인은 백무산 시인의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창비)를 추천하며 이렇게 밝혔다. “감히 말하건대, 그는 이미 하나의 문학사다. 기념비로서의 박물화된 문학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삶의 가장 가장자리들과 호흡하며 아픈 성찰을 통해 갱신되는 문학사! 문학이 윤리가 되는 순간은 윤리를 표방할 때가 아니라 스스로 부끄러움을 잃지 않을 때임을 이 시집을 통해 확인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달에 만나는 시#서부역#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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