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천년의상상이 펴낸 인문서 ‘김수영을 위하여’가 출판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내용 때문이 아니다. 편집자에 대한 ‘예우’가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이 책은 표지에 ‘강신주 지음|김서연 만듦’이라며 저자와 편집자의 이름을 나란히 넣었다. 표지 뒷면에도 저자와 편집자 소개를 함께 넣고, 책 말미에도 ‘저자의 말’에 이어 ‘편집자의 말’을 싣는 파격까지 선보였다. 보통 편집자의 이름은 판권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등장하는 게 관례다. 표지에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는 ‘편집부 공저’일 때 정도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7일 ‘주간동아’ 연재 글과 페이스북을 통해 “책을 만든 편집자 이름이 저자의 무게만큼이나 대접받은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지은이의 힘 있는 글쓰기와 편집자의 열망을 합쳐 완성했다’는 출판사의 설명에서 두 사람(지은이와 편집자)이 주고받은 정신적 교류의 크기를 가늠해볼 따름이다. 저자가 편집자 이름을 표지에 올리고 싶다는 이 소박한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지만 앞으로 이런 교감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한 소장의 페이스북에 “편집자는 저자의 그림자 속에 있을 때 오히려 빛날 수 있습니다”란 댓글을 달아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출판동네 뒷담화라면 몰라도 편집자 이름이 표지나 판권에 나가는 게 도대체 독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갖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략)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책 구석자리 어딘가에다 수줍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조차도 솔직히 말하면 지극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자의 원고가 아닌 것이 책에 들어가는 것은 자칫하면 출판의 타락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한 소장의 페이스북 글에는 장 대표 말고도 여러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편집자는 밤하늘, 저자는 별” “과연 ‘편집자’가 ‘만듦’을 대표할 수 있는 직군인가” 등 편집자에 대한 파격적 예우를 반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영화가 성공하면 배우와 함께 감독도 조명을 받지만 베스트셀러가 나와도 책을 ‘연출’한 편집자는 드러나지 않는 게 출판계의 관행이다. 편집자가 기획한 뒤 적절한 필자를 끼워 맞춰 내놓는 ‘기획 도서’에서조차 편집자는 ‘을’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한 출판사 편집장은 “편집자 이름의 게재 여부는 지엽적인 문제다. 갈수록 편집자의 역할과 비중은 커지는 데 비해 대접은 제자리에 머무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이번 논란의 배경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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