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묵고 있는 작은 술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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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0일 03시 00분


■ 호텔프리마 뮤지엄서 토기 - 청자 등 120여 점 전시

《‘도연명의 풍류와 이태백의 여흥/꽃 앞에서 손잡고 달 아래서 술을 나누네/신풍(新豊)의 아름다운 술 운안(雲安)의 맛난 술’ 18세기 조선에서 만들어진 ‘백자청화국화시문사각병’에는 꽃 그림과 함께 이런 내용의 한시가 쓰여 있다. 이 병에 술을 담아 마시며 시를 읊고 즐겼던 조상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술병의 아름다움도 술맛을 돋웠을 것이다.》

호텔프리마 뮤지엄에 전시된 앙증맞은 술병들. 호텔프리마 제공
호텔프리마 뮤지엄에 전시된 앙증맞은 술병들. 호텔프리마 제공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만들어진 술병을 모아놓은 전시회가 열렸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호텔프리마 내 ‘호텔프리마 뮤지엄’에서 8월 31일까지 열리는 ‘여흥(餘興)과 유풍(遺風)-작은 주병(酒甁)전’. 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120여 점을 모았다.

전시품의 대부분은 미술 애호가이자 컬렉터인 이상준 호텔프리마 대표(55)가 20년 넘게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모은 것들이다. 일본인들은 한국 도자기의 멋에 반해 1930∼70년대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기름병, 간장병 등을 가져가 술병으로 썼다. 이 때문에 이번 전시에는 유독 앙증맞은 술병이 많다. 눈에 띄는 전시품은 16세기에 제작된 ‘분청사기덤벙편병’. 도자기를 백토(白土) 물에 ‘덤벙’ 담갔다 꺼내는 방식으로 분장하는 일명 덤벙 기법을 쓴 것. 질박한 개성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1999년 취임한 이 대표는 2000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7만 달러에 낙찰받은 18세기 조선 백자대호, 일명 ‘달항아리’다.

이 대표는 2007년 호텔 내에 박물관을 만들고 로비와 식당 곳곳에 동서양과 근현대를 아우르는 800여 점의 예술품과 문화재를 전시했다. ‘해외 환수문화재 특별전’ ‘조선분청사기전’ ‘조선백자철화전’ 등 특별전도 열었다. 이 호텔에 들어서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 ‘자화상’, 일본 고서적상에서 구입한 18세기 한반도 지도도 걸려 있다. 일본인이 그린 이 지도에는 독도가 조선 땅으로 표시돼 있다. 이 호텔의 주요 고객은 일본인들이다.

호텔에 예술을 접목하자 안목 있는 여성 고객이 늘어 이 대표 취임 당시 연 60억 원이던 매출이 현재 연 300억 원 수준으로 뛰었다고 호텔 측은 밝혔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미술#전시#호텔 프리마#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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