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산을 걷노라면 많은 생각들이 내 뒤를 따라온다. 손전등은 오로지 내가 나아갈 몇 미터의 주위만 밝히고 있다. 산의 나머지 부분은 암흑 속에 있다.
야간산행. 나는 지금 서울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관악산을 오르고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오르기 시작한 낯설지 않은 산. 야간산행만도 여러 번이지만, 매번 올 때마다 산은 다른 느낌으로 서 있는 것 같다. 산의 높이도, 산길의 구부러짐도 늘 그대로였을 텐데. 혹시 나의 느낌만 나이를 먹어온 것은 아닐까 싶다.
컴컴한 산을 오르는 일은 의외로 밝은 때의 산행보다 더 수월하다. 앞으로 올라야 할 먼 길을 보며 헛되이 힘을 빼는, 예의 그 곁눈질이 없기 때문이리라.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힘이 들 때는 현재만 보고 걷자. 그러면 모든 일이 더 수월해질 것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쉬어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무렵. 산꼭대기 연주암으로 오르는 가파른 층계 초입과 주변의 연등이 보인다. 산정의 바람을 상상하며 다시 한번 다리에 힘을 모아 본다. 어느새 산 정상. 주위가 환해지고, 아래에선 잠잠하던 바람은 산 위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 그 바람을 맞으며 담담한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서울을 내려다본다. 저 빈틈없는 도시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 우리는 각자의 산에 얼마만큼이나 올라와 있는 걸까.
이윽고 또 하루의 태양이 떠오른다. 이 시간을 위한 다짐이나 각오 같은 것은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정상을 오르며 흘린 땀을 씻어주는 바람과 오월의 햇살이 더없이 고마울 뿐.
마침 연주암 공양시간이라 기분 좋게 아침을 먹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스케치북을 펼쳐 들었다. 고요한 산사. 지극히 평범한 인생의 또 하루. 그래서 더욱 소중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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