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나의 남편으로 맞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는 그날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맹세합니다.”
결혼의 계절인 5월, 하얀 웨딩드레스보다 눈부신 신부는 이런 결혼 서약을 한다.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의 신부도 똑같은 맹세를 했다. 단지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한다”는 한 문장을 더 말했을 뿐.
미 스탠퍼드대 부속 젠더 연구소의 비교문학자인 저자는 성경부터 현대 여성이 즐겨 보는 잡지 코스모폴리탄까지 살펴보며 최초의 아내 ‘이브’ 이후 지금까지 변화해온 아내들의 속내를 파헤쳤다. 그러고는 결혼 서약에서 ‘복종’이라는 말이 사라진, 이 작지만 중요한 변화에 주목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 또는 최악의 재산은 그의 아내”라던 영국 역사가 토머스 풀러의 말처럼 고대와 중세 그리고 시민혁명 전까지 아내는 재산에 불과했다. 성경 창세기 속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간 예비 신부의 집에서 봉사했다. 처녀라는 재산의 소유권을 아버지로부터 이전받기 위한 비용을 치른 셈. 오늘날 결혼식에서 아버지가 사위에게 딸의 손을 건네는 ‘짠한’ 모습 뒤에는 이 같은 남자들 간의 은밀한 거래의 역사가 숨어 있다. ‘재산’인 아내는 새 ‘주인’인 남편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시민혁명기 이후에도 여전히 약한 존재인 아내는 남성의 보호와 지원을 얻기 위해 남편에게 복종했다. 하지만 유럽의 시민혁명과 미국의 독립전쟁은 아내에게도 정치의식을 심어줬고 더 많은 사회적 역할을 부여했다. 점차 아내는 남편의 동반자로 바뀌게 된다. 아내가 요즘처럼 사회 진출을 할 수 있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 최악의 재앙으로 여겨지는 제2차 세계대전 ‘덕분’이다. 전장으로 나간 남성의 빈자리를 대신해 조선소의 용접공, 설비공 등 남성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곳까지 아내들이 차지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일하는 아내를 장려했다. 1950년대 이후 피임약 및 가사 부담을 줄여주는 각종 가전제품의 등장도 한몫했다. 이때쯤 결혼 서약에서 ‘복종’이라는 말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내라는 틀을 통해 본 서양사가 자못 흥미롭다. 2000여 년을 이어온 수많은 아내의 연애와 결혼, 섹스와 출산, 양육 및 사회 진출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단편영화 소재로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동양의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살사와 탱고 같은 커플 댄스를 배울 때 여성은 남성보다 수월하게 출 수 있다. 인류의 전통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춤들은 완벽히 남성이 이끌고, 여성이 따르기 때문. 여성은 자유롭진 않지만 편하고, 남성은 자유롭지만 힘들다. 오늘날 아내는 남편에게 전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서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저자는 “남편에게 의존하고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전통적인 아내는 더 이상 이상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의 딸에게 물려줄, 그리고 먼 훗날 ‘아내의 역사’에 새겨질 21세기 새로운 아내상을 만드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아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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