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계는 지금 ‘턱수염의 전쟁’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양쪽 다 턱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사진)가 미 경기 회복 처방전을 놓고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 버냉키 의장은 ‘이 정도 돈을 풀었으면 이제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펴고 있는 반면 크루그먼 교수는 정부가 돈을 더 풀어 고실업과 저성장을 막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미 경제계의 ‘빅 마우스’이자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쳐온 크루그먼 교수가 ‘지금 이 디플레이션을 끝내라(End This Depression Now)’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신간을 내놓았다. 그는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 학파의 목소리를 책에 담았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 저성장과 고실업을 겪고 있는 미국 경제를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현재의 미국 경기는 일시적인 경기 침체가 아니라 1930년대 대공황과 매우 유사하다. 케인지언들이 1930년대 지금보다 더한 공황에서 미국을 구했듯이 지금도 케인지언의 처방전이 미국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와 FRB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해 수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었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이를 ‘새 발의 피’로 여기는 듯하다. 그는 이 책에서 “나는 당시 (칼럼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비명을 질러대며 이 금액으로는 턱도 없다고 주장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미 정부가 현재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재정 자금을 쏟아 부어 공무원 등 공공부문의 채용을 다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미국 신용등급을 사상 최초로 강등시킨 원흉이었던 미 재정적자에 대해서도 “과장되어 있으며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 통화국으로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현재 돈을 푸는 것은 ‘악이 아니라 미덕(good economic policy)’”이라며 “이는 인플레이션이 극도로 낮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그는 경제 해법을 내놓는 것은 간단하지만 정치는 절대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발 물러섰다. “거시경제학 교과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정치인들이 포진한 정치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정치권이 자기의 소신과 해결책을 잘 따라주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그의 처방전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미 경제계에서 여전히 논란거리다.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크루그먼은 막된 케인지언이다. 재정적자 증가는 신경 쓰지 않고 명성을 이용해 경기 부양 한 가지만을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그의 신간에 담긴 처방전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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