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까다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와인 소믈리에들이 7일 오후 강원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전통주 회사 국순당 공장을 방문했다. 대전에서 열린 국제소믈리에협회(ASI) 총회와 아시아·오세아니아 소믈리에 대회에 참석한 25개국 출신 97명의 소믈리에를 국순당이 초청한 것이다.
떠먹는 술 이화주에 입이 ‘쩍’
이날 공장 2층 회의실에서는 세계 와인업계를 주름잡는 VIP급 소믈리에들의 특별한 테이스팅 순서가 마련됐다. 세계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 출신인 다사키 신야(田崎眞也) ASI 회장을 비롯해 주세페 바카리니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장, 오카 마사하루(岡昌治) 일본 소믈리에협회장, 1971년 세계대회 우승자인 이탈리아 출신 소믈리에 피에로 사타니노 씨 등 이날 테이스팅에 참가한 8명의 소믈리에는 한자리에 모으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이들이다.
테이스팅은 국순당이 시중에 판매 중인 생막걸리, 백세주, 예담, 복분자주, 오미자주와 고려·조선시대 술을 복원한 송절주, 석탄향, 자주, 이화주 등 모두 9가지 술에 대해 진행됐다. 소믈리에들은 각자의 자리 앞에 놓인 잔에 술이 채워질 때마다 잔을 기울여 색깔을 살피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며 부지런히 평가노트를 작성했다.
엄숙한 분위기를 깨뜨린 것은 오미자주였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이 동시에 나는 오미자주를 맛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술은 대체 무슨 재료로 만든 것이냐”고 국순당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소나무 가지의 마디를 넣어 만든 술인 송절주도 호평을 받았다. 이날 테이스팅 자리의 좌장인 다사키 씨는 “소나무 향이 입안에서 가시지를 않는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인데도 술이 무척 부드럽다”고 말했다.
마지막 술인 이화주를 국순당 관계자들이 잔에 채우자 소믈리에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술을 경험한 이들의 눈에도 된죽처럼 점성이 높아 숟가락으로 떠먹는 술인 이화주는 경이롭게 느껴진 것이다. 한 테이스팅 참가자는 숟가락을 들고 옆자리 동료에게 “요구르트처럼 생긴 이게 술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주의 가능성 확인
우리나라 전통주에 대한 테이스팅 참가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국제 소믈리에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에 와인 열풍을 일으킨 다사키 씨는 특히 같은 쌀 문화권 출신답게 우리나라 전통주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평가를 했다.
다사키 씨는 가장 대중적인 전통주인 생막걸리에 대해 “은은한 과일 향과 밥을 지을 때 올라오는 고소한 쌀의 향을 느낄 수 있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우아한 탄산으로 인해 상쾌함이 느껴진다”고 적었다. 그는 이화주에 대해서도 “중후한 크림색 견과류 향이 특징이다. 참깨, 땅콩, 비스킷 향이 나며 부드럽고 적당한 산도와 요구르트 같은 점성이 있는 독창적인 술”이라고 극찬했다.
성장 배경과 문화가 다른 유럽 출신 소믈리에들은 우리 술에 대해 자신들의 관점에서 독특한 평가를 내렸다. 바카리니 협회장은 백세주에 대해 “호박빛이 살짝 도는 밝은 금색이 인상적”이라며 “매우 강한 생강, 신선한 뿌리와 우아하고 좋은 느낌의 허브와 스파이시한 말린 과일 향, 약간의 타닌감이 느껴진다. 술을 마신 뒤 좋은 느낌이 오래 지속된다”고 적었다.
프랑스 출신인 필리프 포르브라크 ASI 임원은 생막걸리에 대해 “우윳빛을 띠고 있으며 향기로운 배 향기와 부드러운 코코넛 음료의 느낌이 난다. 가벼운 탄산과 단맛과 신맛의 균형이 좋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출신 소믈리에 사타니노 씨는 복분자주에 대해 “자줏빛 붉은색에 풍부한 부케 향이 나는 술이다. 미국 포도처럼 달고 부드럽다”고 적었다.
배중호 국순당 대표는 이날 행사에 대해 “세계적 소믈리에들이 우리나라 전통주 테이스팅 노트 작성 행사에 참석했다는 것은 높아진 우리 술의 위상을 보여주는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받은 평가서는 우리나라 술을 외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해외에 알리는 데 유용하게 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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