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라는 건 존 마이어 씨 말대로 어느 수준이 됐을 때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가는 거죠. 지켜봐주세요. 노력하겠습니다.” - MBC ‘더킹 투하츠’, 2012년 》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해본 적이 있는가. 최소한 나를 포함한 내 주변에서는 드라마는 영화의 하위문화급이며, 그런 걸 좀 좋아한다고 당당히 명함 내밀기는 힘들다는 그런 콤플렉스가 늘 있었던 것 같다. 영화엔 드라마에 없는 완결성과 작품성이 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영화는 예술일 수 있는데, 드라마는 과연 무엇일까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의 미학은 그 불완전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훨씬 강력한 대중성과 동시대성, 그리고 일상성을 갖는다. 두 시간짜리 영화에서 5분 동안 가족이 밥 먹는 장면이 나오면 그 장면은 뭔가 특수한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일연속극에서 가족이 5분간 밥 먹는 장면이 나오면 그 장면은 정말 그냥 밥 먹는 장면이다. 시청자는 그 장면을 보며 자신의 가족과 함께 현실에서 밥을 먹는다. 이건 영화관에 갇혀 현실과 단절된 채 ‘감상’해야 하는 영화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드라마만의 장르적 특성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영화보다 더 정확하게 현실을 읽는 바로미터다. 비교적 단일한 이야기와 주제를 전개해가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 안에는 들쑥날쑥하더라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사상, 그리고 갈등이 그대로 담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역동적인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MBC ‘더킹 투하츠’는 굉장히 재미있는 드라마다. 분명 배경은 가상 한국인데 그 안에 담긴 생각만큼은 현재 한국의 그것 그대로다. 게다가 이 생각이라는 것이 일관되지 않아 더 흥미롭다.
드라마는 북한을 남한의 동지로 그리면서 남북과 미국을 대립시킨다. 이것만 보면 ‘반미’에 ‘좌빨’이다! 평양도 깔끔하고 규모 있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 그려지고, 김항아라는 북한 여성은 탈북여성처럼 마냥 불쌍하지도 않고 귀엽고 예쁘고 똑똑하기까지 하다. 남북통일을 막으려는 한반도 주변국의 정략이나 남북결혼 소식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여론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행사장에선 남한 공주가 게임 얘기를 꺼내며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다보니 게임에서도 과격하게 몰두한다’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이건 뭐 ‘게임이 청소년의 폭력성을 키운다’는 일부 보수세대의 논지전개 아닌가. 하긴 김항아가 ‘시월드’에 인정받는 과정은 한 독립적 여성이 보수적 가부장제 체제에 희생과 봉사로 ‘굽히는’ 과정이었으니 이 드라마를 마냥 진보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입헌군주제라는 배경 자체도 사실 굉장히 ‘반동적’ 아닌가 말이다.
한국사회에는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뒤섞여 있다고들 한다. 드라마도 그렇다고 하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전근대적인 제작시스템에 탈근대적인 소비환경이 뒤섞여 균일한 품질의 작품을 생산해내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드라마다. 일관성 없는 ‘더킹 투하츠’의 세계관은 그런 현실의 일부분일 것이다.
여전히 한국의 드라마 팬들은 일정 수준의 완결성과 작품성을 유지하는 드라마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공주마마의 대사를 빌려 한마디 할까 한다. “드라마의 작품성이라는 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대로의 한국 드라마를 지켜보며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가는 거죠.” 언젠가는 드라마 특유의 동시대성과 일상성, 그리고 전에 없던 완결성을 골고루 갖춘 드라마를 보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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