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살짝 비튼다. 프로이트는 1927년 발표한 논문 ‘애도와 우울증’에서 망자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하면 병리학적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도 ‘성공적인 애도’는 떠난 사람을 잊고 슬픔을 극복해 안정적인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데리다의 시각을 빌려 이의를 제기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떠난 자는 결코 되돌아올 수 없으니 그 상실을 충분히 슬퍼하되 죽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요구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슬픔에는 끝이 없어야 하며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애도일지 모른다.’
책은 문학 작품 및 사회 현상 속에 드러난 애도의 방식을 되짚는다. 사랑뿐만 아니라 사랑을 잃은, 애도 또한 문학의 주 대상이며, 창작 행위가 한 애도 방식으로 해석된다는 시각이다. 응집된 슬픔은 애도의 문학으로 선연하게 피어난다.
애도 행위를 저자는 다른 대상과 연관 지어 풀어간다. ‘몸’과의 관계는 이렇다.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더 이상 그의 몸을 만질 수 없다. 따뜻한 체온의 상실감은 깊은 절망이다. 남은 사람은 시신을 고이 묻고, 묘비를 세워 망자의 몸을 추억한다. ‘(장례는) 우리의 관계가 몸과 몸을 매개로 한 것이었기에, 그 몸을 끝까지 환대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의 주검조차 찾을 수 없다면, 제대로 애도조차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에서는 오이디푸스가 두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에게 자신이 죽어 묻히는 곳을 알리지 않았고, ‘안티고네’에서는 크레온 왕이 안티고네의 죽은 오빠를 반역자라는 이유로 묻지 못하게 하고 들짐승들에게 내놓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주검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슬픔은 더 아리게 다가온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책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을 말한다. 목숨을 잃은 군인 46명 가운데 일부 시신은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은 애끓게 절규한다. ‘죽은 사람이 (바닷속) 추운 데서 떨고 있을 거라는 (유족들의) 생각은 대단히 비현실적이지만, 그러한 비현실적인 생각이 그들에게는 현실보다 더 현실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애도의 기간’으로 분석한 것도 흥미롭다. 햄릿의 아버지가 죽은 뒤 햄릿의 어머니는 한 달 만에 남편의 동생에게 시집갔는데, 이런 비상식적으로 짧은 애도 기간이 햄릿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것. 햄릿의 우울증과 광증, 이로 비롯된 파멸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애도 행위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애도를 중심으로 ‘윤리’ ‘트라우마’ ‘존재’ 등과의 연관성을 풀어냈다. 기발한 접근법과 깊이 있는 분석이 돋보이며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랑은 언젠가 떠나는 유한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을 떠나보내는 애도는 무한하다. 영원한 사랑은 애도로 완성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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