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늦게 나온 이 책도 세계박람회를 다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상상력의…’가 1851년 런던 박람회부터 2012년 여수 박람회까지 각 박람회에 얽힌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소개했다면, 이 책은 박람회학(expology)의 개론서라 할 만하다. 역사학 건축학 미술사 경제사 산업기술사 생태학이 망라된 박람회의 역사를 ‘세계체제’라는 거시적 맥락에서 꿰뚫은 내공이 만만치 않다. 전화번호부만큼 두껍고 책값도 비싸 선뜻 집어들 엄두가 안 나지만 1000컷이 넘는 컬러 도판과 함께 이어지는 근현대 문명사 이야기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여수 엑스포 전략위원과 해양수산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저자는 세계박람회 160여 년의 역사를 담으면서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서술했다. 박람회는 다양한 건축실험, 나아가 도시의 재생까지 이뤄내는 창조의 축제다. ‘진보의 시간표’라는 별명에 걸맞게 박람회에서는 권총 전화 축음기 TV 자동차,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발명품을 선보였다. 대중에게 계몽적 교육과 즐거움을 주는 테마파크이자 축제로 기능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람회의 이런 유토피아적 측면 뒤에 디스토피아가 공존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철학자 발터 베냐민의 지적대로 박람회는 산업계몽에서 벗어나 점차 상업적 물신의 순례지가 되어갔다. 기업이 이끄는 상품의 선전과 소비주의 촉진의 장으로 변해간 것이다. 이는 20세기 초중반 박람회의 주요 개최지가 기존의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본격화했다. 기업자본주의가 노골화될수록 박람회에서 화려하게 빛을 밝힌 기업관의 위상도 높아졌다.
박람회는 교묘한 인종주의의 전시장으로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경영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1889년 파리 박람회는 가족 단위로 끌려온 원주민들을 모아놓고 음식과 생활도구를 제공해 식민지촌을 재현했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는 원주민촌을 만들어 벌거벗은 아프리카 다호메이 부족 100여 명을 ‘전시’했다. 서구인들은 이러한 ‘인간 동물원’을 내려다보며 ‘미개인의 열등함’을 확인했다.
화려했던 박람회의 시대가 한물갔다는 박람회 무용론이 오늘날 나오기도 한다. 박람회의 상당수 역할은 이미 방송 영화 광고 인터넷 등의 매체와 모터쇼 아트페어 등 대체 전시로 옮겨갔다. 수년에 한 번 열리는 박람회는 급변하는 과학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 첨단기술의 발표장이라는 명성도 쇠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박람회가 지금도 “새로운 건축과 전시의 모태, 교통시스템의 혁신, 도시와 지역의 재생 등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며 “이제부터 박람회의 지난 궤적을 묻고 미래를 예측하는 고단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 박람회에는 지구 생태계와 인간의 상생, 지속 가능한 발전과 다양성의 구현이라는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살아 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라는 주제로 8월 12일까지 전남 여수시 여수신항 일대에서 열리는 여수 엑스포가 세계박람회의 미래를 제시하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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