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80분 20초간 저택 빌린 男 물욕에 눈먼 女心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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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2일 03시 00분


■ 뮤지컬 ‘결혼’ ★★★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뮤지컬 ‘결혼’. 충무씨어터컴퍼니 제공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뮤지컬 ‘결혼’. 충무씨어터컴퍼니 제공
이강백 원작의 단막 희곡을 뮤지컬로 극화한 ‘결혼’(정대경 작곡, 연출)은 2005년 서울 중구 저동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거의 소극장 무대에서만 공연된 탓인지 중극장 무대가 벅차 보였다. 피아노 반주자 1명을 포함한 출연자 4명으로 꾸미는 무대는 휑한 느낌마저 준다. 연출가는 ‘여백의 미’를 염두에 둔 것일까. 투박하고 뭔가 빠진 듯한 이 뮤지컬에선 대신 고집스러운 진정성이 엿보인다.

무대는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신부’ 그림이 벽에 걸려 있는 고급 저택의 거실. 80분20초 동안 저택을 빌린 남자(이신성)는 맞선 상대인 여자(김선아)의 마음을 얻어 결혼 승낙까지 얻어내려 사력을 다한다. 남자는 집뿐만 아니라 시계, 신발, 정장 옷을 10분, 30분 등 시간 단위로 빌렸다. 거실 한쪽에 저승사자처럼 버티고 있는 집사(하지원)는 약속된 시간이 다 되면 하나씩 무자비할 정도로 회수해가고 남자는 점점 발가벗겨진다.

뮤지컬은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여자는 남자의 능력을 가장 중요시하는 요즘의 결혼 세태를 풍자하지만 한편으론 인생에 대한 통찰과 은유를 담고 있다. 빈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약속된 시간이 끝나면 다시 빈손으로 떠날 운명인데 뭘 그리 아등바등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하느냐는 메시지를 담았다.

원작 연극은 결혼을 소재로 한 현대판 우화다. 뮤지컬 역시 극중 인형극을 통해 남녀의 과거와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등 우화적인 느낌을 가미하려 했으나 사실주의적 무대 문법에 비중을 두다 보니 어정쩡해졌다. 극적 전개는 다소 허술하지만 피아노 반주의 ‘나는 누굴까’와 ‘오직 사랑’ 등의 뮤지컬 넘버의 가사와 선율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

공연이 끝난 뒤 미리 전화로 신청한 남자 관객 한 명이 무대에 나와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읽는 이벤트는 감동적이어서 공연의 아쉬움을 훌륭히 메웠다. 공연 문의전화로 누구든 신청할 수 있다.

: : i : ;
여자 역에 김선아, 김민선 씨가 번갈아 무대에 선다. 27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4만∼5만원. 02-775-7775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공연 리뷰#뮤지컬#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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