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사노바에 꽂힌 ‘인디’ 아가씨, 혈혈단신 브라질로 쳐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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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9일 03시 00분


싱어송라이터 나희경씨
가요5곡 브라질풍 편곡, 리메이크 새음반 내놔

나희경을 만난 카페에서 영국 디바 아델의 ‘터닝 테이블스’가 흘러나왔다. 나희경은 “이것도 좋지만 저는 다르게 하고 싶다”면서 “전화기 너머로 연인에게 속삭이듯 부르고 싶어 ‘주파수 대역’까지 고려한다”고 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나희경을 만난 카페에서 영국 디바 아델의 ‘터닝 테이블스’가 흘러나왔다. 나희경은 “이것도 좋지만 저는 다르게 하고 싶다”면서 “전화기 너머로 연인에게 속삭이듯 부르고 싶어 ‘주파수 대역’까지 고려한다”고 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올해 초 기자는 브라질 출장 취재가 있었다. 출발 전 음악 관계자에게 ‘브라질에서 만날 만한 사람 있느냐’고 물었다. 주저 없이 ‘나희경’이란 답이 돌아왔다. 전달받은 싱어송라이터 나희경(25)의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리우(데자네이루)에 있어 상파울루에서 뵙긴 힘들겠다’는 답이 왔다.

넉 달 뒤, 나희경의 새 음반 ‘나를 머물게 하는’이 사무실로 날아왔다. ‘춘천 가는 기차’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등 가요 5곡을 브라질풍으로 리메이크한 음반. 참여 연주자는 브라질 현지 명인(名人)들이었다. 리우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는 섭씨 27도까지 올라갔다. 카페에서 만난 나희경은 “리우가 생각나는 날씨”라고 했다. 지난달 10일 귀국했다는 그의 기타 쥔 손이 까맸다.

그는 교포가 아니다. 국내 인디판에서 보기 드문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로 활약해왔다. 2010년 말, 처음 브라질 땅을 밟았다. 좋아하는 브라질 음악을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유학도 아니었다. 혈혈단신 기타 한 대와 옷가지를 들고 하숙집만 예약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의사가 “걷지도 말고 앉아 있으라”며 진단한 ‘만성 달팽이관 염증’은 근이완제와 수면제로 잠재웠다.

30시간 걸려 도착한 리우에서 그는 보사노바 명소 ‘비니시우스’ 바부터 찾았다. 그들은 “음색이 좋다”며 무대를 내줬다. 유명 프로듀서 세자르 마샤두의 눈에 들었다. 호베르투 메네스칼 등 현지 명연주자들과 협연해 보사노바 명곡들을 다시 부른 1집 앨범 ‘희 나’를 2011년 말 브라질과 한국에서 함께 냈다.

그해 4월 귀국한 나희경은 지난해 11월 또다시 리우행 비행기를 탔다. 데뷔 때부터 꿈꿔온 브라질풍 가요 리메이크 음반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번엔 브라질 최고의 피아니스트 호아웅 카를루스 코치뉴를 작업에 끌어들였다. 연주자들은 50∼70대의 베테랑. “이굥기 나(나희경의 브라질식 발음)는 외국인이지만 가사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아 좋은 음색으로 노래한다”는 게 현지 연주자들이 합류하며 건넨 평이었다. ‘에우 소우 희경(나는 희경입니다)’만 되뇌던 포르투갈어는 독한 칵테일 ‘카이피링야’의 취기를 빌려 ‘서바이벌 회화’로 늘린 건데….

그는 프로듀서 마샤두와 연주자들에게 ‘춘천 가는 기차’ 등 한국 노래를 들려줬다. 가사를 한 줄 한 줄 해석해 들려주고 리듬과 화성을 토론하며 몇 개월간 편곡에 매달렸다. 연주자들은 결국 “한국 노래는 멜로디 라인이 신선하고 발음이 매력적”이라며 엄지를 내밀었다.

브라질과 한국을 매년 오가는 나희경은 유복한 집안 딸로 보였다. “아니에요. 음반 제작도 어려서부터 모아둔 돈으로 한걸요.”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희경 가사집’을 만들었고, 3학년 때 피아노로 첫 곡을 썼다. 5학년 때 가수 윤상의 인터뷰 기사에서 본 ‘월드뮤직’이란 말에 가슴이 설렜고 컴퓨터 음악을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엔 비싼 음악장비를 사려고 PC통신으로 물건을 팔았다. 대학 시절에는 방방곡곡의 창작가요제에 출전했다. 돈 벌려고. “20곳 넘게 나갔는데 한 곳 빼고 모두 대상을 받았어요.” 상금을 위해 심사위원 구미에 맞춘 자작곡을 R&B풍의 절창으로 불렀다. “힘주어 부르는 창법을 속삭이는 듯한 창법으로 바꾸는 데 몇 년이 걸렸죠.”

그의 이야기에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오디션 반짝 스타를 꿈꾸는 또래 젊은이들과의 거리가 느껴졌다. 그는 내년에 세 번째 브라질행에 나선다고 했다. 이번엔 자작곡을 현지 연주자들과 녹음하기 위해서다.

“절 움직이게 하는 건 단순해요. 어딘가 낯선 곳에 몸을 담가보고 싶다는 것. ‘그래야 나를 알겠구나’라는, 굳은 믿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보사노바#인디 음악#나희경#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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