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크게 두 개의 운동으로 이뤄진다. 직선운동과 곡선운동이다. 정열적으로 발을 구르고 손을 찌르는 동작이 직선운동이라면 골반이나 관절을 흔드는 것은 곡선운동이다.
행위예술가 강성국(32)은 움직임 그 자체가 춤이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그는 손과 발이 뒤틀려 있다. 그래서 걷거나 팔다리를 들어 올리는 직선운동을 할 때 손과 발은 저절로 곡선을 그려낸다. 무대 위에서 펼치는 그의 힘겨운 몸짓이 묘하게 춤사위를 연상시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김남진(44)은 일찍부터 이를 주목했다. 25∼27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무용극 ‘Brother’는 2010년 ‘미친 백조의 호수’로 이어진 두 사람의 공동작업 출발점이다. 2008년 국내 초연된 이 작품은 홍콩 스위스 벨기에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해외 무대에서 각광을 받으며 30분 분량에서 50분 분량으로 성장했다.
어두운 구석에 엉켜 있는 두 남자의 몸이 맞물린 채 구르고 버둥거리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은 처음엔 모른다. 그중 한 명의 몸이 ‘다르다’는 것을. 마치 자석처럼 붙은 두 개의 몸이 뒹구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 차이에 눈뜨게 된다.
자궁 속 샴쌍둥이처럼 움직이던 둘은 이윽고 빨강과 하양 각 한 벌의 상하의를 교차해 나눠 입으면서 다시 바뀐다. 둘의 상체와 하체가 엇갈려 결합하면서 제3의 신체를 빚어낸다.
이번 공연에선 드라마적 요소가 강화됐다. 형과 동생이 손잡고 걸어가는 동영상, 형제가 축구를 하다 다투는 장면, 그리고 서로의 얼굴과 몸에 빨간 립스틱을 칠하는 장면을 추가했다. 여기에 거문고 반주에 구음과 민요가락을 들려준 김향은 씨의 창작곡 ‘달아’를 더했다. 이를 통해 작품은 네 가지 이질적 요소의 충돌과 조화를 담아냈다. 첫째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몸이라면, 둘째는 현대무용과 국악이다. 셋째는 빨강과 하양이고, 넷째는 토끼와 두꺼비다. 뒤의 둘은 설명이 필요하다.
이 무용극 속 하양은 단절과 거부이고, 빨강은 소통과 수용을 상징한다. 형은 자신과 다른 동생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붉은색 천이 이를 대신한다)을 끊어내고자 한다. 그 순간 흰색 자갈돌 무더기를 동생의 온몸에 쏟아 붓는다. 그런 형이 동생과 소통의 수단으로 택한 것이 빨간 립스틱이다. 처음엔 서로의 입술 위에 뭉개지며 웃음을 끌어내던 립스틱은 이윽고 둘의 몸에 기나긴 선을 문신처럼 새겨 넣는다. 그들을 연결하는 핏줄이고 운명이다.
동아시아에서 토끼와 두꺼비는 달을 상징한다. 작품 속에서 토끼와 두꺼비, 그리고 달이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구조로 통합된다. 동생이 아끼는 토끼인형은 형의 대체재로 우애를 상징한다. 반면 형이 부르는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란 동요로 등장하는 두꺼비는 동생을 거부하려는 형의 이기심을 상징한다. 이 둘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에 투사한 국악 창작곡 ‘달아’로 하나가 된다.
이 무용극에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에 걸린 형을 잠시나마 외면했던 김남진의 죄의식과 차별적 시선을 예술로 승화시킨 강성국의 개인사가 함께 녹아 있다. 이들이 작품의 뼈대를 이룬 직선운동이라면 이를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로 승화시킨 게 이 작품의 곡선운동 아닐까. 강성국의 미니 홈피 첫머리를 장식한 글귀, ‘예술은 발꼬락(발가락)에서 시작된다’가 가슴에 사무치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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