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는 불만이다. 박명수는 말한다. “나도 1인자가 되고 싶어.” 인기 개그맨인 그이지만 국민 MC로 불리는 유재석이 부러울 따름이다. 아마 출연료도 꽤 차이 날 것이다. 스포츠에선 그 정도가 더 심하다. 2위는 3위보다 훨씬 아쉬워한다. 체육 연금 포인트가 올림픽 금메달은 90점, 은메달은 30점, 동메달은 20점이다. 아시아경기는 10점, 2점, 1점으로 더 차이가 난다. 국민 대부분은 박태환과 김연아만 기억한다. 종목 나름이겠지만 어떤 분야에선 세계 최고가 되면 스포츠 빌리어네어, 1조 클럽 가입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1인자와 2인자의 기량 차이가 그만큼 나는 것은 아니다. 9번 우승컵을 안은 프로야구단 해태는 이 가운데 4번이나 정규 시즌 승률 2위에 머물렀다. 첫 우승한 1983년에는 MBC에 종합 승률에서 0.005가 모자랐다. 1987년에는 삼성에 승차가 6.5경기나 뒤졌다. 롯데는 1984년 6팀 중 종합 승률 4위, 1992년 8팀 중 3위에 그치고도 헹가래를 쳤다. 두 팀 모두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 집중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2000년대 초 삼성 이승엽과 현대 심정수의 질긴 인연도 흥미롭다. 심정수는 2002년 46홈런 119타점, 2003년 53홈런 142타점의 외계인급 활약을 펼치고도 MVP는커녕 타이틀조차 차지하지 못했다. 이승엽이 2002년 47홈런 126타점, 2003년 56홈런 144타점으로 한 발씩 앞선 때문이다. 당시 많은 투수들은 심정수를 상대하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 타자의 칭호를 얻은 건 이승엽이었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레이스는 70 대 66으로 끝났다. 4개 차이지만 베이브 루스 위에 이름을 올린 건 맥과이어였다.
▶타이거 우즈는 전성기 시절 라운드당 평균 타수가 2위보다 1타 이상 앞선 것은 2000년과 페덱스컵 우승 보너스 1000만 달러까지 석권한 2007년, 2009년의 3번밖에 없었다. 데뷔 이듬해인 1997년부터 2년 연속 평균 타수 2위에 오르며 시동을 건 그는 1999년부터 불륜 스캔들이 터진 2009년까지 두 시즌을 빼고 1위를 지켰다. 2004년에는 비제이 싱과 어니 엘스에게 뒤졌고, 2008년에는 부상으로 규정 라운드를 채우지 못해 통계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대부분 시즌은 2위보다 0.2타에서 0.9타 정도 앞섰지만 슬럼프를 겪고 있는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돈 잘 버는 스포츠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우즈는 세계 랭킹이 23위로 떨어진 지난해에도 상금은 206만 달러에 그쳤지만 스폰서와 광고 등 부수입으로만 6200만 달러를 보탰다. 2009년(1억2200만 달러)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전 종목을 통틀어 최고 수입을 올렸다.
▶그렇다면 1인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2인자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다시 우즈로 돌아가 보자. 참고로 數포츠에서 골프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기록 집계가 야구를 비롯한 그 어느 종목보다 잘돼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즈는 흑인 특유의 파워를 앞세운 롱게임이 주특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2009년 기록을 보면 드라이브 비거리가 298.4야드로 21위, 페어웨이 적중률은 68.46%로 83위에 그쳤다. 스코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그린 적중률도 68.46%로 13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평균 타수 2위 스티브 스트리커에 1.24타나 앞설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쇼트게임 능력 때문이었다. 우즈는 352개 홀에서 그린을 놓쳤지만 240개 홀에서 파 이상의 스코어를 기록해 스크램블링 능력에서 68.18%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벙커에 빠졌을 때 파 이상을 잡는 샌드 세이브율은 61.86%로 3위, 퍼트의 스코어 기여도를 수치화한 통계에선 2위에 올랐다. 파3 홀(평균 2.96타)과 파4 홀(3.97타)에선 크게 스코어를 줄이지 못했지만 파5 홀(4.43타)에서 절반 이상 버디 행진을 벌인 것도 그린 주위의 세 번째 샷, 즉 쇼트게임 능력과 관련이 있다. 현 세계 랭킹 1위 루크 도널드는 전성기 때의 우즈보다 낫지는 않겠지만 능력 편중 현상이 쇼트게임 쪽에 더욱 치우쳐 있다.
▶골프 같은 개인 종목은 한 선수가 특정 분야에서 굳이 1위를 차지하지 못해도 된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골고루 잘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단체 종목에선 다르다. 분업화가 잘 이뤄진 야구에선 타격의 정교함이 없어도, 수비를 아예 못해도, 거북이 걸음이라도 한 방만 있으면 통한다. 단적인 예로 맥과이어는 은퇴 직전인 2001년 타율이 0.187로 곤두박질쳤지만 56안타 가운데 29개를 담장 밖으로 넘겨 그런 대로 밥값을 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선 지명타자 평균 연봉이 930만 달러로 선발투수(490만 달러)의 두 배에 이르렀다. 수비 포지션인 유격수(390만 달러)와 포수(260만 달러)는 비교가 안 된다. 포지션별 연봉을 보면 농구는 센터, 축구는 공격수, 미식축구는 쿼터백이 아무래도 많이 받는다. 골 넣는 수비수 이정수 차두리와 골키퍼 김병지가 있긴 하지만 멀티 플레이어보다는 한쪽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더 환영을 받는다. 외모도 중요한 조건이다. 마리야 샤라포바가 테니스 세계 랭킹과는 별도로 7년 연속 여성 스포츠 스타 1위에 오른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2인자는 마냥 괴로운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필 미켈슨은 대표적인 2인자로 불리지만 그가 연말 기준으로 세계 랭킹 2위를 유지한 것은 2007년과 2009년뿐이다. 만약 우즈가 1위 자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내줬다면 당장에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켈슨은 그런 부담에서 자유롭다. 대신 미켈슨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톱5를 유지했고, 최근 10년간 15위 밖으로 처진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히 성적을 거뒀다. 온화한 외모와 상대를 배려하는 경기 매너, 각종 선행으로 필드의 신사로 불리는 그는 지난해 상금 400만 달러에 부수입 3800만 달러를 벌어 웬만한 종목의 1인자를 능가하는 소득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미국과 유럽 투어에서 1320만 달러의 상금 신기록을 세운 도널드의 총수입 2170만 달러의 두 배에 이른다. 결국 미켈슨은 2인자 중의 1인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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