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주어졌을 때 최선의 판단을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상을 떠돌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과 논리만을 딛고 서서 산뜻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가 수학 물리학 경제학을 버무려 이 같은 시도를 했다.
물론 저자의 판단이 무조건적으로 따를 만한 절대적 선(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의 많은 판단에 자신의 가치관이 큰 영향을 미치고 생명 혹은 신념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일수록 가치관의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책의 미덕은 살면서 겪는 의문들을 철학만이 아닌 경제학 수학 같은 도구로 답해보려 했다는 그 방법론에 있다.
저자는 세상의 문제를 △실재와 허구 △믿음 △지식 △옳고 그름 등으로 분류한 뒤 자신의 사고방식을 기술하고 마지막 장은 ‘생각하는 방법’으로 장식했다.
‘실재와 허구’에서는 수학법칙은 필연적 진실이며 실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이용해 ‘지적 설계론’의 허구를 리처드 도킨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적한다. 지적 설계론자들은 우주가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설계가 필요하고 그가 바로 신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수학도 인간 유전자보다 더 복잡한 체계를 가진 대상이지만 그 누구도 ‘1+1=2’ 같은 덧셈이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여기지는 않는다며 이를 근거로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수학은 오래전부터 변함없는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반적으로 글을 솜씨 있게 풀어내는데 이 대목에서는 ‘리처드 도킨스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과도한 공을 들였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의 판단을 무조건 따르기 힘들다고 한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주로 공리주의적인 해결책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차 1대가 선로를 따라 급속도로 달려가고 있을 때 한쪽 선로에는 5명이 묶여 있고 다른 선로에는 1명이 묶여 있다면 스위치를 작동해 전차를 1명이 누운 쪽으로 돌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저자는 1명을 희생해 5명을 살리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말한다. 도끼를 든 사나이가 여자를 쫓아오면서 여자가 숨은 장소를 묻는 경우에도 좋은 결과를 위해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칸트처럼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용납해선 안 된다는 의무론적 철학자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도 많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놀랍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기하학적 지식의 일부라며 열심히 설명하고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도입하는 등 물리학과 수학을 넘나든다. 반면 인내심을 갖고 읽더라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철학적 문제에 대한 경제학적 해법으로는 ‘경제학자의 황금률(EGR)’을 제안하는데 이것 역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 근거를 둔 방안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경제학적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면 이득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관점에서 봐도 옳은 결정이라는 덧붙임과 함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사고(思考)실험이 많아 생각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으면 읽어내기 힘든 부분이 제법 많다.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에서도 지나치게 경제학적 이득을 주요 가치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독자 개인의 가치관과 상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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