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예술적 무대, 파격적 무용… 충격의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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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5일 03시 00분


■ 무용 ‘그리고, 천년의 평화’ ★★★★

인류 멸망의 모습을 파편적인 이미지로 묘사한 ‘그리고, 천년의 평화’. 이 제목은 ‘인류가 멸망한 뒤 올 1000년간의 평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더스페이스 제공
인류 멸망의 모습을 파편적인 이미지로 묘사한 ‘그리고, 천년의 평화’. 이 제목은 ‘인류가 멸망한 뒤 올 1000년간의 평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더스페이스 제공
무겁고, 침울했다. 세계적인 디스크자키(DJ) 로랑 가르니에의 테크노 음악은 자극적이었고, 요한계시록에 기초한 세상의 종말과 그 속의 인간 형상은 때로는 과도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줄거리도 중간 휴식도 없이 100분간 이어진 이미지 중심의 무용은 파편적으로 다가섰다. 그래서인지 ‘컨템퍼러리 발레 종결자’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과거 작품에 비해 다소 기대에 못 미쳤다. ‘로미오와 줄리엣’(1990년) ‘공원’(1994년) ‘카사노바’(1998년) ‘백설공주’(2008년) 등은 발레와 현대무용의 탁월한 조합을 보이며 시대의 걸작으로 기억되지 않던가.

프렐조카주가 이끄는 발레 프렐조카주 무용단의 ‘그리고, 천년의 평화’가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 폐막작으로 지난달 30, 3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2010년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기획 작품이다. 러시아 발레의 전통을 현대화하기 위해 과감하게 프랑스 안무가 프렐조카주를 선택한 것이다.

기존 작품 중 하나를 전수하려던 프렐조카주는 결국 본인의 무용단원 10명을 투입해 21명으로 신작을 짰다. 고전발레로는 세계 최고인 볼쇼이지만 ‘현대’와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토슈즈를 벗는 것도 힘겨운 무용수들에게 개개인의 자아 표출은 불가능했다. 볼쇼이판 컨템퍼러리 발레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천년의 평화’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인도 미술가 수보드 굽타의 무대 미술은 작품 전반에 걸쳐 돋보였다. 일상품을 오브제로 활용해 예술성을 창조하는 아상블라주(assemblage)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육체의 막이 된 투명비닐, 요한계시록을 상징하는 듯한 책, 하늘에서 떨어지는 쇠사슬, 복면 또는 옷으로 변하는 만국기(아이러니하게 러시아 국기가 없다) 등 수많은 오브제가 등장했다. 이동형 벽은 거대한 무대장치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여러 조합으로 작품 내에 녹아 있었다. 스테인리스 주방기구로 만든 모자를 쓴 여인들과 피날레를 장식한 양 두 마리의 등장은 굽타의 3차원적 콜라주가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천사 날개를 단 두 여인의 유연함, 안대로 눈을 가린 한 남성과 2인무를 추는 여인의 관능미, 군무진의 힘찬 약동은 프렐조카주의 천재성을 입증했다. 특히 물에 담근 국기를 공중 높이 뿌리고, 바닥에 떨어진 물 위로 미끄러지는 장면의 박진감이 일품이었다. 예리한 이성으로 육체와 동작을 탐미하는 프렐조카주. 그의 협력자 굽타, 러시아와 프랑스, 고전과 현대. ‘춤의 아상블라주’는 그렇게 완성됐다.

장인주 무용평론가
#공연 리뷰#무용#공연#그리고 천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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