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장희의 미국 스케치 여행]<4·끝>뉴욕 브루클린 다리

  • Array
  • 입력 2012년 6월 9일 03시 00분


맨해튼 향해 걸으니 사라진 쌍둥이 빌딩이 눈에 선하다

내 이름이 불린다. 한 공무원이 빳빳한 종이로 만들어진 내 비자 증서를 살핀다. 비자는 중세의 고문서처럼 붉은 인장들로 장식돼 있다. 그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한다. “멋진 나라(프랑스)에서 오셨군요. 그렇지만 훨씬 더 멋진 나라에 오신 겁니다.”

그는 나에게 8달러를 요구한다. 그리고 세관원들이 내 가방을 설렁설렁 뒤진다. 드디어 나는 사람들이 지루해하며 졸고 있는 넓고 둥근 홀로 들어선다. 나는 이제 자유롭고, 문의 반대쪽에선 뉴욕이 기다린다.

- 시몬 드 보부아르 ‘L´Am´erique au jour de jour(America day by day)’

뉴욕 시는 다섯 개 지역으로 나뉜다.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스태튼 섬이 그것이다. 그중 400여 년 전(1626년) 인디언에게 24달러를 주고 샀다는 맨해튼 섬은 오늘날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됐다.

맨해튼에 들어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먼저 기차를 타고 그 유명한 그랜드센트럴 역에 내리면 된다. 버스를 타고 타임스스퀘어 부근에 도착하는 방법도 있다. 또는 시내 곳곳을 관통하는, 100년도 넘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지하철을 타고 원하는 위치에서 불쑥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강을 건너기 전, 병풍같이 늘어선 위압적인 마천루의 숲을 감상하며 달려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역시, 걸어서 섬에 들어가는 것이다.

맨해튼 섬에 연결된 다리는 많다. 그렇지만 걷기에 좋기로는 단연 브루클린 다리가 꼽힌다. 이 거대한 현수교는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연결한다. 1883년 개통 당시에는 세계 최초의 강철 다리이자 최장(1053m)의 현수교였다. 14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됐으며 존 로블링과 워싱턴 로블링 부자가 대를 이어 다리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다리 위에 철로도 놓여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위쪽 가운데로는 보행자가, 아래쪽 좌우로는 자동차가 지난다. 특히 나무로 만들어진 고가 산책로는 특이하고 근사한 경험을 선사한다.

다리에는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아치가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여기에 다리의 배경으로 놓인,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맨해튼 마천루의 장관이 브루클린 다리를 세계적인 명물로 만들었다. 그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문명의 발전상을 하나로 모아 놓은 듯하다. 화려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장중함이 인상적이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변해 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2001년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사라진 것만큼 극적인 사건은 없었을 듯하다. 그 사건은 당시 뉴욕에 있었던 내게 잊지 못할 깊은 성찰을 남겼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이른 아침 맨해튼으로 향하는 길에 브루클린 다리에 올랐다. 언제 걸어도 가슴 설레는 다리 위의 길. 시인 월트 휘트먼은 이 산책길을 두고 ‘나의 영혼이 지금껏 섭취한 것 중에 가장 효과적인 약’이라며 감탄한 바 있다.

천천히 맨해튼을 향해 걷는다. 다리의 주탑 아치 사이로 뉴욕, 그리고 맨해튼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뉴욕에 있는 며칠 사이 계속해서 서울이 떠올랐다. 어떤 그리움일까. 단지 몇 주를 떠나와 있을 뿐인데 그 거리의 풍경들이 왜 이토록 눈에 선한 걸까.

“그래. 뉴욕은 멋지다. 하지만, 나는 더 멋진 도시에서 온걸!” 절로 웃음이 났다.

(이상으로 미국 스케치여행을 마칩니다. 다음 주부터는 국내 스케치여행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aht.com
#뉴욕 브루클린 다리#쌍둥이 빌딩#스케치 여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