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은 미국 중국 러시아 멕시코 필리핀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재외동포들을 결집하고 독립운동을 펼쳤다. 당시 도산이 소지했던 여행권(여권)을 통해 그의 구체적인 독립운동 여정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30년 넘게 여행권에 기록된 것만 따져도 지구 한 바퀴(약 4만 km)를 거뜬히 돌고도 남는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도산의 여행권 3개를 바탕으로 그의 독립운동 여정을 따라갔다. 여권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일본식 용어이며 당시 해외 한국인들은 이를 여행권·집조(執照)·호조(護照)라고 썼다. 김 연구위원은 “도산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가장 많은 여행권을 사용한 인물”이라며 “평생 4, 5개의 여행권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3개만 전해진다”고 밝혔다. 그는 이 연구 결과를 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안창호기념관에서 열리는 제37회 도산학회 정기 연구발표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김 연구위원의 발표문 ‘도산 안창호의 여행권을 통해 본 독립운동 행적’에 따르면 도산은 1902년 8월 대한제국 외부(外部)에서 ‘집조’를 발급받았다. 도산과 부인 이혜련 여사는 이 집조를 갖고 일본과 캐나다 밴쿠버, 미국 시애틀을 거쳐 1902년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도산은 미국에서 재미 한인들을 모아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를 만드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미국을 떠나 1907년 2월에 귀국한 뒤에는 신민회를 창설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이어 일제의 회유와 감시망을 피해 1910년 4월 중국 칭다오(靑島)로 갔다.
도산은 1910년 8월 중국 상하이(上海)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으며 연해주와 흑룡주 일대에서 국민회 조직을 확장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1년 1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청국 총영사관에서 ‘호조’를 발급받아 중국에 갔다. 특히 1911년 5∼8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만주 무링, 러시아 치타, 이르쿠츠크,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독일 베를린을 거쳐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이어 런던에서 배를 타고 그해 9월 미국 뉴욕에 도착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로 내려갔다. 1911년 한 해에만 태평양을 제외하고 거의 지구 한 바퀴를 돈 셈이다.
도산은 멕시코 한인들의 초청으로 1917년 10월∼1918년 8월 멕시코 전역을 순회하며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19년 5월에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1925년 4∼7월에는 미국 동부지역을 순회하며 교포들에게 연설을 했다. 1929년 2, 3월에는 필리핀에서 한인단체 ‘대한인국민회 필리핀지부’를 설립해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마닐라에서 삼일절 기념행사도 거행했다. 1932년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윤봉길 선생의 의거가 일어난 뒤 도산은 일본 경찰에 체포돼 국내로 송환 및 투옥되면서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연구위원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여권을 발급받아야 했으나 도산은 대한제국의 신민이라며 대한제국에서 발급한 여행권을 들고 세계를 누볐다”며 “1924년 이전까지는 세계적으로 여행권이 제도화되지 않은 데다 도산은 정치망명가라는 이유로 입국이 허용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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