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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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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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아부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MBC)》

“뭐하니?” 처음으로 받아보는 아버지의 카카오톡 메시지.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만다. 그 대신 스마트폰 자판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누른다. “서점 왔어요. 아버지는 재미있게 놀고 계세요?” “이모님 집에서 졸고 있음.” 아버지의 답에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양 엄지손가락을 움직인다. “심심하시군요.” “맛있는 거 마니 드시고 오세요.” ‘오후 5시 35분’이란 시간 표시가 두 개의 메시지 앞에 나란히 떠 있다. 5분이 지난 후에야 답이 돌아온다. “‘마니’가 아니고 ‘많이’지. 박 기자!’

작은 웃음이 얼굴에 떠올랐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아버지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지 딱 1주일 만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어머니에게 사용법을 배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져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네∼ 이거 카톡 보내기도 조심스럽네요.” 다시 답장을 보내고,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주말 오후 생각지도 못했던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김선아)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7년 전부터 지금까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온 친구 녀석들이 모두 한 번씩은 다 내뱉었던 것 같은 이 말. 헤어짐 뒤에 심장에 새겨진 상처를 이보다 더 간결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리고 때론 부럽다. 소주를 마시며 실연의 상처를 달래는 그 순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 그녀가 부럽다. 그것이 ‘아부지’와 ‘아버지’, 그 한 끗의 차이인 걸까.

아버지는 아들과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한번은 집 앞 호프집에서 “왜 그렇게 아들 술을 못 먹여서 안달이시냐”고 물었다. 이미 500cc짜리 몇 잔이 빈 뒤였다. 아버지는 “이래야 너랑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셨다. “술 안 마셔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자신은 없었다. 아버지도 드라마 속 그 장면을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동성의 부모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살가운 대화를 통해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시던 그 모습, 아내와 자식들이 그렇게 핀잔을 줘도 번번이 슬리퍼를 신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시던 그 모습. 그저 나이가 들어 아버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서, 그런 모습들을 몸으로 체험하며 알아 갈 뿐이다. 결코 멍든 가슴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일은 없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2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거의 절반(48.9%)은 하루에 아버지와 30분도 채 대화를 나누지 않거나 아예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나는 10대였을 때 어땠나…. 아버지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시간을 애써 가늠해 본다. 품 안의 자식이나 품을 떠나버린 자식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네 살 때 돌아가신, 성직자였던 아버지를 매우 그리워했다고 한다. 궁핍하게 생활했으면서도 약간의 돈이 수중에 들어오자 아버지 묘소에 커다란 묘석(墓石)을 세웠을 정도. 그리고 그는 묘석에 신약성경 고린도전서의 한 구절을 따와 새겼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거늘.’

굳이 삼순이처럼 하소연을 늘어놓지 않아도, 주말 오후의 카카오톡 대화가 짧게 끝나도,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원한다. 공간은 떨어져 있지만 우리의 시간은 언제까지나 함께하기를.

동그라미 동아일보 기자. 동그라미가 좋다. desdemona98@naver.com
#이 한줄#내 이름은 김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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