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여류 소설가 두 명이 3년 전 미국에서 열린 국제창작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세계 각국에서 온 문인들 틈에서 같은 아시아인에 같은 소설가, 연배도 비슷한 둘은 3개월 동안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한국 소설가는 매콤한 한국 라면을 끓여줬고, 일본 소설가는 달콤한 카레를 만들어주며 양국 문화와 문학에 대해 얘기했다. 두 사람은 소설가 강영숙(45)과 나카지마 교코(中島京子·48).
지난해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중국에 머물던 강영숙은 도쿄에 있는 나카지마가 염려돼 국제전화를 걸었다. 나카지마는 위로전화가 고마웠고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지진해일의 악귀 같은 영상, 참담한 피해, 수많은 사망자와 실종자…. 강영숙은 그해 3월 말 나카지마에게 e메일 한 통을 보낸다. ‘쓰나미와 인류, 사랑 등에 대해 함께 얘기해보지 않을래?’
두 소설가가 8월부터 함께 일본 월간 문예지 ‘스바루’에 에세이를 연재한다. 격월로 12월까지 3차례에 걸쳐 연재되는 이번 에세이에서 이들은 동일본 대지진과 한류 등을 다룰 예정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나카지마를 강영숙과 함께 만났다. 통역은 김석희 인하대 BK21동아시아한국학사업단 박사후연구원이 맡았다.
세계 각국의 재난재해가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내 눈앞에 펼쳐지는 시대에 동일본 대지진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이번 지진은 내가 겪은 가장 큰 지진이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많이 잃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나카지마) “그동안 구제역이나 인도네시아 지진 등 재난재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써왔는데 이제는 가까운 분들이 그런 위험에 직면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쓰기가 부담될 것 같다.”(강영숙)
나카지마는 지진 얘기가 이어지자 “아직도 계속 흔들리는 느낌이 들고, 끝나지 않은 기분이 든다”며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 “한순간에 돈도 집도 목숨도 없어질 수 있구나 싶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하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강영숙은 ‘리나’ ‘아령 하는 밤’ 등 사회성 강한 묵직한 소설을 써왔다. 나카지마는 국내에서도 출간된 ‘작은 집’에서 보듯 유머러스한 스타일로 알려졌다. 둘 모두 양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중견 작가로 강영숙은 김유정문학상을, 나카지마는 나오키상을 받았다. 사회의 냉철한 관찰자인 두 작가가 본 양국의 요즘 모습은 어떨까.
“지진 이후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하려 하지만 반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일본인을 보기는 힘들어요. 일본인은 반대 의견이 있어도 자신이 직접 나서길 꺼리죠.”(나카지마)
“한국인은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에너지가 있어요. 그런 기질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했지만 시스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모든 사람이 함께 고민한다는 것은 사회적 낭비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강영숙)
한류는 어떨까. 강영숙은 “솔직히 한류에 큰 관심은 없었다”고 했지만 나카지마는 달랐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같아요. 일본 잡지만 열면 한국 스타가 나오고 한국 식재료 상점도 많이 늘었죠. 저는 한국 과자를 자주 먹어요.”
두 사람은 “거대한 담론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친구와 함께 편안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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