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좌파 경제학자 랑셴핑(郞咸平) 홍콩중문대 석좌교수가 신작을 내놓았다. 랑 교수는 ‘자본전쟁’ ‘중미전쟁’ ‘부자중국 가난한 중국인’ 등의 저서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신간 ‘최고 위기 직전에 놓인 중국 경제(中國經濟到了最危險的邊緣)’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중국 경제 진단서다. 통계의 허점을 짚어내고, 미시적 사례를 파고들어 전체를 보여주는 저자 특유의 분석기법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9.24%. 수치만 놓고 보면 괜찮은 성적표다. 하지만 책은 경제 수도 상하이의 사례를 들어 중국식 성장모델이 한계에 달했다고 지적한다. 제11차 5개년 계획(2007∼2011년) 상하이의 누적 지역총생산(GRDP) 증가액은 약 6조 위안(약 1090조 원). 이 중 도로나 부동산 등 고정자산 투자에 따른 증가분이 2조3000억 위안이다.
문제는 고정자산 투자를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것. 이미 지난해 1∼11월 상하이의 고정자산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0.9% 줄었다. 전국적으로도 7.8%가 감소했다. 랑 교수는 “고정자산에 투자하는 돈은 국유은행에서 나온다. 그런데 국유은행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국유은행이 겉으로는 건실한 것 같지만 속은 곪아터졌다고 지적한다. 4대 국유은행 중 한 곳인 건설은행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고정자산에 속하는 부동산 대출이 4000억 위안, 건축업 대출이 1500억 위안이다. 하지만 이는 건설은행의 ‘매우 창의적인’ 분류 기준에 따른 것일 뿐 실제로는 고정자산에 너무 많은 돈이 묻혀 있다. 우선 철근·시멘트 업종을 제조업으로 분류해 9788억 위안을 빌려줬다. 또 철근·시멘트 관련 기업이 철도 건설 사업에 관여하면 운수업종으로 분류해 여기에 6500억 위안을 대출해줬다. 고정자산 투자나 다름없는 전력설비업종에 5200억 위안이 투입됐다. 랑 교수는 “건설은행의 고정자산 투자 대출은 총 3조2700억 위안으로 전체 대출의 82%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추가 대출 여력이 별로 없는 데다 부동산시장이 더 침체되면 대규모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대형 국영기업의 허장성세도 해부했다. 중국석화 등 3대 석유회사의 2010년 순익은 2891억 위안. 하지만 이 수치는 중국 정부의 각종 보조금 덕분이다. 1994∼2006년 국영기업에 대한 직접보조금은 3653억 위안. 2007년부터 직접보조금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2009년까지 3년간 중국석화 등 석유메이저는 774억 위안의 보조금을 받았다. 이외에도 국영기업들은 대출금리가 1.6%(사기업은 평균 5.4%)에 불과하고 공장 및 사무실 용지를 공짜로 쓰는 데다 세금도 국제 평균보다 턱없이 낮다. 만약 공업용지 가격의 3%를 임차료로 지불한다면 2001∼2008년 국영기업 누적 순익의 70%를 내놓아야 한다.
임금 상승에 따른 제조업 원가 상승도 중국 경제 위기의 한 원인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임금은 평균 9.8%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인 8%(전망치)를 웃돈다. 저자는 임금 상승의 가장 큰 이유로 정부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고정자산 투자를 늘리는 과정에서 통화팽창을 유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임금 상승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현재로선 중국 경제가 이를 흡수할 만한 체력도, 아이디어도 없다고 본다. 그러면서 원가 부담을 극복한 사례로 한국과 일본을 든다. 한국은 1980, 90년대 임금 상승으로 제조업의 원가경쟁력이 떨어지자 정보기술(IT) 산업을 집중 육성해 산업구조를 개편했고 일본은 임금 상승을 내수 소비 확대로 유도해 경제의 체질을 개선했다는 것.
랑 교수는 중국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지적과 분석이 중국의 현실을 적확하게 진단했는지와는 별개로 랑 교수의 글은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을 숨 가쁘게 달려온 중국이 안고 있는 고민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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