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을 품에 안은 괴물들 …내 거울속에 비친 그 괴물들…
■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대사를 빌려 말했다. “연극의 목적이란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향해 거울을 들어 올리는 일”이라고.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히타자와 세이고 작·김광보 연출)는 정확히 이 말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학교폭력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연극의 거울에는 피해학생이건 가해학생이건 학생은 단 한 명도 비치지 않는다. 거울에 비치는 것은 학생들의 부모와 교사, 어른들뿐이다. 하지만 웬만한 학교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보다 신랄하게 문제의 핵심을 짚어낸다. 괴물 같은 아이들의 뒤에는 괴물 같은 부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무대는 서울 강남 명문 여중의 깔끔하고 우아한 상담실이다. 어느 학교에나 있는 창이 줄지은 복도를 지나 문이 열리고, 교사의 안내로 중산층의 경제력과 교양으로 중무장한 학부모들이 하나둘 입장한다. 교장과 교사들은 그들 앞에서 쩔쩔맨다.
그들은 이날 아침 2학년 3반 교실에서 발생한 유감스러운 일 때문에 긴급 소집됐다. 그 학급의 여중생이 교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다. 자살한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들 자식이 받았을 충격으로 수다를 떨던 그들은 곧 충격적 사실을 통보받는다. 자살한 학생이 남긴 유서에서 집단따돌림의 가해학생으로 지목한 다섯 급우가 바로 자신들의 딸임을.
부모들이 보인 첫 반응은 충분히 이해된다. “우리 애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다”라며 현실을 부정하고픈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자녀에게 불리한 증언과 증거가 속속 쏟아지자 그들은 돌변한다.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학교 명성에 금이 가게 된다며 교장을 겁박하는가 하면 자식에게 불리한 증거를 교사들 앞에서 태연히 인멸한다. 교사를 공범으로 끌어들여 사건을 무마하려다 급기야 피해학생에 대한 마녀사냥에 나선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려운 가정형편을 타개하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고학하던 학생을 ‘독한 년’으로 둔갑시키고 그 어머니는 공부해야 할 딸에게 돈벌이를 시키는 ‘몹쓸 엄마’로 몰아붙인다.
그들은 금쪽같은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온갖 궤변을 늘어놓는다. 핵심은 책임 전가다. 아이들이 그런 일을 벌이는 동안 학교는 뭘 했는가를 물고 늘어지다가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자책성 발언을 하는 학부모가 등장하면 “무책임한 위선자”로 몰아붙인다.
그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피해학생이 겪었을 모멸감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가해자인 자신들 자녀의 윤리적 감수성이 마비되고 인성이 파괴된 것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체면과 자식들의 장래에 구정물이 튀지 않도록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돌려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노예일 뿐이다.
놀라운 점은 연극을 보면서 그런 학부모들의 모습이 결코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극은 1시간 30분 내내 과연 당신의 자녀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묻는다.
학교폭력 뉴스를 접한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피해자가 될까 걱정할 뿐 설마 가해자가 되리라곤 상상 못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학교폭력의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항상 더 많지 않던가.
학부모 역으로 출연하는 손숙 박용수 박지일 이대연 길해연 서이숙 손종학 우미화 서은경 등의 배우들 대부분이 악역하곤 거리가 먼 배우라는 점도 이런 거울효과를 강화한다. 늘 내 편이라고 믿었던 그들조차 저렇게 쉽게 타락하는데 나라고 뭐가 다를 것인가.
이 연극은 2008년 발표된 일본 희곡을 번안했지만 어색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일본과 한국의 사회문제 싱크로율의 격차가 줄었다는 소리다. 그건 곧 나부터 바뀌지 않는 한 일본 열도가 헤어나지 못하는 저 무기력의 늪에 한국도 계속 빠져들 것이라는 경고다.
: : i : : 7월 2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4만∼6만 원.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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