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이너이거나 로맨티시스트이거나. 이른바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아티스트는 대개 이 두 부류에 속하지 않을까. 하지만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내한공연을 가진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와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멜니코프 듀오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아티스트이다.》
그동안 이 듀오, 특히 파우스트는 참신한 감각과 모던한 취향, 그리고 치열한 학구적 자세를 바탕으로 팬층을 확보해 왔다. 이날 공연은 그런 그의 강점과 매력, 그리고 연인 사이인 멜니코프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십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위주였다. 분명 이 듀오가 최근에 내놓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아르모니아 문디)이 각종 음반상을 석권한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텐데, 아마도 관객 중 상당수는 5번 ‘봄’과 9번 ‘크로이처’라는 양대 인기작을 기대하며 공연장을 찾았을 것이다.
첫 곡인 베토벤의 소나타 4번에서부터 파우스트는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다운 기량을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활 전체를 고르게 사용하며 뽑아내는 명징한 톤, 정교한 운궁으로 빚어내는 다채로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음색 변화, 강렬한 악센트와 미묘한 뉘앙스의 냉철한 대비 등이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음색 면에서 그와 상보적 관계를 이루며 훌륭한 파트너십을 보여준 멜니코프도 인상적이었는데, 아마도 많은 관객이 이들 덕분에 이 비인기작의 매력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1부와 2부에 한 곡씩 연주된 베버의 작은 소나타에서 이들은 유쾌한 위트까지 곁들이며 또 다른 매력을 드러냈다.
‘봄’ 소나타에서도 파우스트의 바이올린은 빛을 발했다. 특히 1악장 주제가 흐르기 시작할 때 피어오른 다사로운 뉘앙스가 각별했다. 다만 칸타빌레적인 맛과 여유가 다소 부족했던 4악장은 면밀한 분석과 숙고에 기초했을 그의 해석에도 아직 보완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듯했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는 두 연주자가 작심한 듯 과감히 격돌했는데, 그 열기가 조금은 과도했던 듯 간혹 위태로운 면을 노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모험과 스릴의 묘미로 가득했던 흥미진진한 연주였다.
앙코르로 연주한 존 케이지의 ‘야상곡’을 들으면서 다음번에는 파우스트가 자신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근·현대 레퍼토리를 들고 내한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던 건 필자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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