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작가’ 故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 아시아 첫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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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6일 03시 00분


모든 건 변한다는 게 변치 않는 진실임을…

1980, 90년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꼽히는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더블전’에 선보인 하늘색 커튼 설치작품 ‘무제(러버보이)’와 500kg의 사탕을 바닥에 깔아 놓은 ‘무제(플라시보)’. 플라시보는 작가의 기념비적 사탕 작품으로 사탕을 집어가는 관객의 참여를 통해 서서히 줄어들었다가 다시 원래 형태로 채워진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1980, 90년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꼽히는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더블전’에 선보인 하늘색 커튼 설치작품 ‘무제(러버보이)’와 500kg의 사탕을 바닥에 깔아 놓은 ‘무제(플라시보)’. 플라시보는 작가의 기념비적 사탕 작품으로 사탕을 집어가는 관객의 참여를 통해 서서히 줄어들었다가 다시 원래 형태로 채워진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무제(완벽한 연인들)
무제(완벽한 연인들)
한 쌍의 둥근 벽시계가 나란히 전시장에 걸려 있다. 한날한시에 건전지를 넣어도 아날로그시계의 특성상 시간은 차츰 어긋난다. 쌍둥이 시계 중 한쪽이 먼저 멈춘다. 삶의 유한성에 대한 암시이자 아무리 완전한 연인들도 둘 중 하나를 앞장세워야 하는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에 또렷한 발자취를 남긴 신화적 아이콘으로 꼽히는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1957∼1996)의 ‘무제(완벽한 연인들)’란 설치작품이다. 같은 물체를 쌍으로 제시하는 그의 조형어법에 초점을 맞춘 ‘Double’전이 9월 28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빌딩 1층 플라토에서 열린다. 설치, 사진, 퍼포먼스 등 44점을 망라한 아시아 첫 회고전이다.

쿠바 태생의 곤살레스토레스는 스페인 보육원과 푸에르토리코의 친척집을 전전하다 1979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사진을 공부했다. 1988년 첫 개인전을 연 뒤 에이즈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활동 기간은 10년 남짓인데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며 존재감과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사후에 개인전이 57회 개최됐고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2011년 그를 테마로 이스탄불 비엔날레가 열렸다. 미국에서 보수정권이 득세했던 시절에 난민, 유색인종,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라는 사회적 소수자의 처지에서 주류 미술계의 언어로 중심부를 파고든 명민함으로 다중 굴레를 극복한 것이다.

사적이고 공적인 것, 시적 은유와 정치적 비평을 결합하고 생과 사, 변화와 영원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대중이 다가설 수 있게 감성으로 표현한 작업의 양면성이 매력적이다. 전 작품의 제목은 ‘무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관객 마음대로 작품을 해석하고 즐기는 자유와 책임을 허락한 것이다. 실생활 공간에서 더 많은 대중을 만나고자 했던 작가의 소망대로 리움미술관 로비, 서초동 삼성사옥, 궁금증을 유발하는 텅 빈 침대 사진을 담은 6개의 옥외광고판까지 곳곳에 흩어진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한 전시다. 2000∼3000원. 1577-7595

○ 모든 것은 변한다

500kg에 이르는 은빛 사탕 더미가 반듯한 네모 형태로 바닥에 깔려 있다. 관객이 사탕을 집어 가도록 허락한 작품이라 사각형은 야금야금 허물어진다. 작가보다 앞서 에이즈로 고통받다 떠난 연인의 몸무게(34kg)만큼의 또 다른 사탕작품은 절절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사탕 전구 구슬 커튼 등 일상적이고 한시적 재료를 사용한 그의 작품은 사랑과 죽음 등 개인사의 고백이자 예술의 개념, 소유, 공공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풍경을 담은 인쇄물도 수북이 쌓여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씩 집어 가면서 부피가 줄어든다. 사탕도, 인쇄물도 어느 순간 채워지고 원래 형태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임을 보여준 작업은 궁극적으로 삶과 죽음, 파괴와 재생, 변형과 영속의 순환을 일깨운다. 곤살레스토레스 재단의 앤드리아 로전 이사장은 “사람들의 참여와 작품의 관대함이 작업의 핵심 요소”라며 “주류든 주변부든 우리 모두는 평등하며 중심에 설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 불멸을 꿈꾸다

시한부 인생을 살며 죽음에 대한 강박에 시달린 작가의 작업엔 원본이 따로 없다. 전시에 나온 대부분의 작품은 그가 남긴 작품명세서에 따라 다시 만든 것이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물리적 원작의 개념을 파괴한 대신 소장자 큐레이터 관객이 작품에 개입하고 재구성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그의 일생을 적은 벽텍스트 작품도 그렇다. 어머니의 죽음 같은 개인사와 수소폭탄 발명 같은 공적 사건이 뒤죽박죽 혼재된 작품에선 전시 때마다 기획자의 재량으로 일부 다른 내용으로 바뀐다. 내 삶을 타인의 손에 맡겨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허문 작품은 영원히 새로 태어나는 셈이다.

삶은 덧없다. 사탕 밭은 줄어들고 입 속 사탕은 녹아 사라진다. 그러나 사탕은 다시 채워지고 누군가는 달콤한 사탕을 즐길 것이다. 채움과 비움의 영원한 맞물림을 통해 작가는 개인의 유한함을 넘어 인간의 역사로 완성되는 진정한 불멸을 꿈꾸는 듯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미술#전시#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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