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모두가 떠난 오지 마을 詩人을 만나 詩가 됐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30일 03시 00분


◇시인의 오지 기행 고요로 들다/박후기 외 지음
336쪽·1만4000원·문학세계사

강원 홍천군 살둔산장. 시인 박후기는 “사람들은 저마다 상처를 가슴에 안고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봉인을 뜯듯 밤새 산장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흉금을 터놓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세계사 제공
강원 홍천군 살둔산장. 시인 박후기는 “사람들은 저마다 상처를 가슴에 안고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봉인을 뜯듯 밤새 산장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흉금을 터놓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세계사 제공
다가오는 휴가철. 이름난 휴가지는 도심 못지않게 번잡하다. 바가지 상술은 얄밉다. 스트레스를 풀러 왔지만 되레 쌓이기 일쑤. 인구 5000만 명을 넘었다는 한국에서 이제 한적한 곳은 없는 걸까.

박후기 손택수 이문재 김산 고영 등 시인 23명이 전국 곳곳의 오지를 찾았다. 강원도 골짜기 산장, 충북의 수몰지 인근 마을, 뭍에서 통통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전라도의 외딴 섬. 인적이 끊긴, 또는 드문 이런 곳에서 시인들의 시상(詩想)은 풍부해지고 사색은 깊어진다.

강원 홍천군 살둔마을을 찾은 시인 박후기는 이렇게 말한다. “물리적인 거리, 혹은 도달 시간만을 두고 말한다면 더이상 ‘오지’는 없다. 마음에서 잊힌 곳을 찾아간다고 했을 때, 오지라는 말은 비로소 원래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전남 신안군 앞 다도해를 찾은 시인 손택수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수평선은 하나의 일현금(一絃琴)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튕길 수 없는 그 한 줄이 무수한 몽상을 가능케 한다.”

강원 정선군 단임골을 찾은 이문재는 13년 전 이곳에서 보낸 아침을 시처럼 표현했다. “전파가 잡히지 않아 라디오조차 들을 수 없던 곳. 그해 6월, 하룻밤 자고 문을 열었을 때, ‘귀가 캄캄했다’. 사방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찬란했다. 산간에 들이퍼부어지는 햇살은 새소리와 버무려지면서, 공중에서 은박지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오지에는 빈집이 흔하다. 온기가 사라진 집은 아프게 쓰러져 간다.

충북 보은군 어부동의 한 빈집 앞에서 시인 김상미는 읊조린다. “빈집을 만나면 매운 고추라도 먹은 것처럼 아린 기운과 함께 알 수 없는 슬픈 기운이 몸속으로 퍼져나간다.”

막상 오지에 가면 별 볼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근처에 민박집도 음식점도 거의 없다’는 한 시인의 솔직한 고백처럼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끊임없이 오지를 찾고, 그곳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본다. 그렇게 사람들의 휴가는, 인생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책의 향기#문학#시인의 오지 기행 고요로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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